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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국법과대학교수회장 이호선 “사법시험 존치해야 법학이 산다”/ 이호선(법학부) 교수

- 전국법과대학교수회 신임 이호선 회장에게 듣는다 -

지난 2월 변호사시험법 부결 후 일반인도 예비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주자는 목소리가 정치권에서 나오자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는 “예비시험제 도입은 로스쿨 도입 취지에 배치된다”며 논의를 중단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예비시험제를 둘러싼 논쟁은 지난 4일 로스쿨 인가를 받지 못하거나 받지 않은 전국 69여개 법과대학들이 예비시험제 도입을 촉구하고 나서면서 로스쿨 대학과 비로스쿨 대학간의 신경전으로 확대되기 시작했다. 비로스쿨 대학들은 '전국법과대학협의회' 준비모임을 결성, 24일 출범할 예정이다. / 본보 2009년 3월 13일자 기사.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범으로 인가를 받은 대학과 그렇지 않은 대학간 법학교육의 명운이 갈리고 있다. 25개 대학은 2009년부터 법학사 신입생을 모집을 중단, 대학원 체제로서의 로스쿨에 전념하고 있다. 반면 60여개 법과대학(법학부 등)은 사법시험 폐지 및 대학 구조조정 등으로 존폐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로스쿨 비인가 법과대학들은 2009년 전국법과대학협의회를 결성,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행보를 시작했다. 창립 이후 여러 활동이 있었지만 지난해 4월 서완석 회장(가천대 법과대학장)이 임기를 시작하면서 법조인력양성제도의 지향점을 향한 활동이 현저하게 눈에 띄기 시작했다. 지난달 29일 그 후임으로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 교수가 선출됐다. 법조인력양성제도, 법학발전 방안 등에 대한 이 신임회장의 지난 수년간의 활동상은 마치 불도저 같았고 컸다. 그만큼 이 분야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고 애착이 짙어서 일 것이다. 이 신임회장을 인터뷰 했다. 법학과 법조인력양성의 난맥상을 짚고 발전방향을 물었다. 이하 일문일답. 

- 전국법과대학교수회를 간단히 소개한다면. 

2009년 3월 24일, 로스쿨 잔존 법학부를 제외한 전국의 법과대학(58개 대학)들이 주축이 돼 결성된 전국법과대학협의회를 그 전신으로 하여 2015년 4월 지금의 이름으로 명칭을 바꿨다. 현재 비로스쿨 법과대학 및 법학과, 그리고 학부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교수들로 구성돼 있으며, 법과대학들은 학교 차원에서 회원교로 가입돼 있다. 

- 신임 회장으로서의 간단한 본인 소개 한 말씀. 

제31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 (제21기)을 수료한 뒤 법무법인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영국 리즈 대학 (University of Leeds)에서 EU 및 국제비지니스법을 공부하고 2005년부터 국민대학교 법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2년 6월 전국법과대학협의회에서 「법학교육 정상화와 법조인력 양성제도 개선방안」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이 때 발표한 주제가 “법조인력 양성제도 개선방안–사법시험 존치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중심으로”였다. 법과대학과 교수들 차원에서 사시존치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계기가 바로 이 토론회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법시험존치와 관련된 사법개혁에 관해 관심을 갖고 소견을 피력한 것은 꽤 됐다. YS 시절 개혁을 빌미로 한 미국식 로스쿨 도입 움직임이 있었을 당시 “사법개혁, 부실시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제목의 글을 「시민과 변호사」라는 잡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는데, 그 때가 1995년 4월이었다. 성수대교가 무너져 부실시공 논란이 한창 일었던 때인데 4년차 풋내기 변호사의 눈에도 포퓰리즘에 가까운 로스쿨 도입 주장은 ‘부실제도’를 예고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 때 제가 지적했던 것이 충분한 대비없이 로스쿨을 도입할 경우 ‘기울어진 운동장’으로서의 기회균등 결여, 학문으로서의 법학 고사 문제였다. 제가 무슨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라 상식이 있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문제였다. 그로부터 12년 후에 로스쿨 제도가 도입됐고, 그 과정의 졸속에 비례해 사법시험에 비할 바 아닌 후유증은 우리 온 사회가, 그리고 미래 사회가 떠안게 됐다. 

- 현 법과대가 위기라고 한다. 상황을 요약한다면. 

우선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는 것은 법과대학의 위기가 법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의 위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로스쿨이 변호사 자격이라는 법기술적 요소에 초점을 두고 법학석사를 양성하기 때문에, 굳이 변호사 자격이 없더라도 각 분야에서 법적 사고 (legal mind)를 갖고 현장 실무형으로 일해야 하는 인재들을 더 많이 키워내야 한다. 실제로 제가 아는 어느 대기업 임원은 법무팀에서 필요로 하는 것은 전직이나 개업의 기회와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는 변호사들 보다는 평생직장이라는 생각으로 일하는 법학을 전공한 일반 직원이라고 했다. 변호사 자격을 갖고도 평생 있으면 될 것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본인에게도, 기업에게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어려운 기대다. 그럼에도 대학에서는 취업률 지표 등만을 갖고 비로스쿨 법과대학, 법학과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시도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견이다. 각종 공무원, 기업의 법무팀 등에서 일하는 중간 허리형 인재들에 대한 수요는 급격하게 올라가지도 않지만, 급격하게 떨어지지도 않는다. 현실적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학문으로서의 법학이 고사 위기라는 것이다. 학문 후속 세대가 나오지 않는다. 학문에서 자기 학교를 넘어서까지 읽히는 교과서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면 심각한 것 아닌가. 법학은 국가 경쟁력이다. 총으로 전쟁하지 않는다면 그 다음의 수단은 법이다. 총으로 전쟁을 해도 결론은 법이다. 이론적 토대없이 법 기술만으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더구나 법학은 우리말을 넘어서 영어는 물론 제2, 제3의 외국어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만큼 학부에서부터 법학의 기초와 언어능력이 같이 배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에 어떤 법학 고전 한권을 샀는데, 표지와 인쇄는 최신이지만, 그 번역된 수준은 30년 전에 출간되었던 번역본에 훨씬 못 미쳤다. 내공을 갖춘 학자들이 점점 없어진다는 것이다. 법학의 종속은 정신의 종속이자, 국가 간 게임 규칙의 종속이다. 법과대학이 위기를 맞는다면 그건 법학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미래가 위험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들이 있다면. 

때론 어려운 문제처럼 보여도 해답은 의외로 쉬울 수 있다. 로스쿨 도입 논의 때 상당히 진전됐던 이야기 중 하나가 전국 고등법원 소재지 마다 정원 200명 규모의 로스쿨 하나씩 5개 정도를 두자는 것이었다. 이 로스쿨은 특정 대학이 아닌 법원, 검찰, 대학에서 인력을 파견해 운영하는 공적기관이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야 지금처럼 로스쿨들의 자의적 선발, 불투명, 불공정한 입시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예비 공직자들의 선발권을 아무런 합리적 이유없이 대학 교수들에게 준다는 것은 국가가 임무를 해태하는 것이고, 이런 법을 만든 국회는 입법권을 남용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건 지금 당장 로스쿨의 운영을 대학으로부터 회수할 수 없다면 그나마 로스쿨들이 적정 인원을 갖고 제대로 교육할 수 있도록 환경을 터주되, 배출되는 법조인력 숫자를 감안해 정원 150명 규모의 로스쿨 10개를 남기고, 나머지 로스쿨들은 학부제로 회귀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정원을 반납하고 돌아온 로스쿨들과 법과대학에게는 사법시험을 둠으로써 이들 역시 법조인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전체적으로 로스쿨 1,500명, 사법시험 500명이 돼 전체적으론 지금과 같은 숫자를 유지하게 된다. 사법시험이 존치되면 학부만 활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로스쿨들에게도 활로가 된다. 

- 신임 회장으로서 구체적 현안과 해결방안들은. 

지금 당장의 과제는 사법시험 존치다. 20대 국회에도 이미 몇 개의 사법시험존치 관련 법안이 법사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다. 각 법안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여러 법안이 계류되어있는 것이 법사위에서의 심의 진척에 그리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일부 사법시험존치에 소극적인 세력에게 빌미를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조만간 법안을 발의한 각 의원들을 상대로 단일 통합 법안을 도출하자는 제안을 할까 한다. 이해관계가 조금씩 다른 부분들에 대해 가능한 공통분모를 찾아 합의를 하고, 이견이 여전한 부분은 차라리 개정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식으로 최소한 공유하는 부분만이라도 도출해 단일 법안을 제출할 경우 법사위에서도 더 이상 심의와 결정을 미룰 명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존치되는 사법시험이 학부에서의 법학교육과 유기적으로 연계될 수 있는 방안도 같이 연구해 그 결과를 내놓겠다.

- 현 법학계가 로스쿨과 법과대학으로 양분돼 있다. 공생이 필요하지 않나.

우리 전국법과대학교수회는 물론 제가 아는 바 비로스쿨 교수들 중에서 로스쿨 존립 자체를 부정하거나 로스쿨을 폐지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다. 사법시험을 존치하자는 것도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것이 로스쿨과 법과대학이 상생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100명이라도 뽑는 사법시험이 존치되면 로스쿨이 흔들릴 수 있다는 황교안 총리의 인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데, 아마도 로스쿨 교수들 중에서는 이 말에 동의하는 분들이 꽤 있는 것 같다. 1,500명의 로스쿨은 항상 수요가 있을 것이다. 사법시험 500명을 뽑는다고 해서 문 닫는 학교는 없을 것이다. 만일 문을 닫는다면 몇 개는 그럴 수 있겠다. 그래도 그건 시장의 선택인데, 로스쿨이 시장의 선택까지 인위적으로 막아야 할 지고지선의 제도는 아니지 않는가. 제도를 위한 제도가 목적은 아니다. 법조인 양성 창구가 이원화된다고 걱정하는데, 지금까지 몇 년 동안 로스쿨 출신과 사법연수원 출신을 로클럭과 검사로 임용하면서 무슨 문제가 있었는가. 나중에 공직 사회의 파벌을 걱정한다면 그런 걱정은 기우이거나 말을 위한 말이다. 경찰, 군대와 같은 조직도 간부 양성 통로는 다양화돼 있다. 

- 로스쿨협의회의 법학사 쿼터에 대해서는.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건 왜 로스쿨협의회 쪽에서 정도(正道)를 생각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생각해 보라. 결원자가 나오는 로스쿨이 어디이겠는가. 소위 “스카이(SKY)” 결원자, “인서울” 로스쿨 결원자가 있겠는가? 법학사들은 어떤 학교들로 가라는 말인가. 정말 쿼터제를 생각하고 있다면, 그리고 법학에 소양과 흥미를 갖고 있는 뛰어난 고교 졸업생들을 법학부로 유인하고, 이들이 제대로 법학 기초를 쌓아 로스쿨로 진학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는 진정성을 보인다면, 정식으로 입법청원을 하면 된다. 다양성을 핑계대는 분들이 있는데 인류의 가장 오래된 학문 중의 하나인 법학을 활성화하는 것이야 말로 다양성이다. 큰 나무를 죽여 관목을 살리자는 것이 다양성은 아닐 것이다.

- 향후 전국법과대학교수회를 이끌 포부 한 말씀. 

지금 우리 법과대학교수회의 주된 관심사는 사법시험존치와 학문으로서의 법학의 위기 탈출, 대학 구조조정의 격랑 속에서 법과대학, 법학과의 위상과 역할 제고와 같은 문제들이지만, 이런 발등의 불을 끄는 외에, 사회 양극화, 분노사회, 불평등, 불공정, 유리천정과 같은 말로 대변되는 이 시대에 법학을 하는 사람들로서 균형 있는 조정자, 불편부당한 양심으로서 내야할 소리도 있다. 전국법과대학교수회에는 다양한 전공과 경륜을 가진 교수님들이 계신다. 이 분들이 본인의 전공을 살려 사회적 이슈에 대해 법학의 관점에서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기회를 가능한 자주 만들 생각이다. 자본과 포퓰리즘,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학자적 양심으로 시대를 진단하고 해법을 고민하는 가장 실용적인 사회적 학문인 법학의 고유 기능을 되살리겠다. 

- 기타 전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현대 사회의 특징 중의 하나가 파편화와 소외다. 관심 역시 ‘파편화’되어 있다는 생각이다. 공적 관심사도 나와 이해관계가 없으면 남의 일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모든 일에 다 관심을 가질 수는 없지만, 아무 관심도 갖지 않아서는 결코 안 될 것도 있다. 국가라는 공동체를 어떤 규범을 엮을 것인가, 그 규범을 만들고, 해석하고, 집행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모두의 이해관계가 달린 일이다. 101호 사람이 102호의 내부 인테리어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지만, 101호와 102호 사이의 벽과 기둥, 복도와 지붕은 모두의 이해관계가 달린 일이다. 사법시험이나 법학, 법조인 양성은 각 영역 사이를 가르거나 덮는 벽, 복도, 지붕과 같다. 지금 대한민국이라는 건물의 기둥, 벽, 지붕에 심각한 균열이 가고 있다. 벌써 얼마큼은 기울어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일부는 정말 무관심하여, 일부는 이해관계로 인해 의도적으로 무관심하거나 나아가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잘되고 있다고 우기는 현상을 볼 때 정말 안타깝다. 점점 더 무관심과 무력감에 젖어 더 이상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상황에 처하기 전에 가시적인 대책이 있어야 하겠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대한민국 20대 국회에 본연의 도리를 다하도록 촉구하고 싶다. 

 

원문보기 : http://www.lec.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