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의대에 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대에 진학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는 더 열심히 공부했다. 아침 7시부터 새벽 2시까지 식사·운동시간을 제외하곤 온종일 공부와 연구에 매진했다. 성실한 노력과 크고 작은 성공들이 반복됐다. 자연스레 노는 것보다 공부에 집중하게 됐다. 학부 졸업 후 카이스트에서 전자공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미국 UC버클리에서 박사후과정으로 경력을 쌓았다. 그리고 2013년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로 임용됐다. 얼마 전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신경세포 모방 소자 개발에 성공한 최성진 교수의 이야기다.
글 이소원 사진 김한석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한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하드웨어 자체가 인간의 뇌처럼 동작하게 합니다.”
국민대학교 최성진 교수팀이 세종대 김성호 교수팀과 함께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신경세포 모방소자 개발에 성공했다. 이들의 연구 성과는 2017년 2월 국제 학술지 ‘ACS Nano’에 게재되기도 했다. 연구팀이 개발한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인간 두뇌 신경세포의 특성을 모사해 만들었다.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디지털인 컴퓨터와 달리 인간의 뇌처럼 아날로그 방식으로 스스로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한다. 컴퓨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도는 떨어지지만, 저전력으로 복잡한 정보를 인식할 수 있다.
인간의 시냅스 모사한 신경세포 모방소자
“미국에서 박사후과정을 하면서 몇몇 한국 대학에 지원했어요. 제가 배운 지식을 한국에서 나누고 싶었거든요. 한국의 다른 대학에서도 교수 제의를 받았지만 국민대를 선택했어요. 이유요?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님들의 연구가 활발했어요. 국민대를 선택한 건 활발히 연구하는 교수님들과 함께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박사후과정을 마치고 국민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는 최성진 교수의 표정은 확신에 차 있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성실하게 노력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의욕이 넘친다는 그에게 신경세포 모방소자에 대해 좀 더 쉬운 설명을 요청했다.
“생물시간에 뉴런과 시냅스 배웠지요? 뉴런은 신경세포를 뜻해요. 뉴런과 뉴런을 연결해주는 것이 시냅스인데요. 시냅스의 동작을 모사한 전자소자를 개발했단 뜻과 같아요. 우리 인간의 두뇌는 심오한 미지의 세계잖아요? 컴퓨터가 0과 1만 쓰는 ‘디지털’ 기계라면 인간은 좋다 나쁘다의 사이에 ‘조금 좋다’, ‘아주 좋다’, ‘별로다’ 등 여러 가지의 중간 단계가 있어요. 이런 인간의 두뇌 방식을 구현할 수 있는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토대가 바로 ‘신경세포 모방소자’입니다.”
인간의 몸에는 1조가 넘는 숫자의 신경세포(뉴런)가 있다. 하나의 신경세포 당 만여 개의 시냅스가 연결되어 있고, 신경세포와 시냅스가 여러 개 모이면 신경회로가 된다. 이런 신경회로가 여럿 모여 정신 작용을 한다. 즉,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인간의 학습에 따라 강약이 조절되는 시냅스의 현상을 모방한 것이다.
최 교수는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한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하드웨어 자체가 인간의 뇌처럼 동작하도록 하는 기술로 스마트로봇, 무인자동차 등 지능형 시스템에 활용할 수 있다”며 “차세대 컴퓨터는 적은 에너지로 동시다발적인 정신작용을 하는 인간 뇌의 효율성을 모방한 시스템이 주를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시냅스에는 학습의 개념이 들어간다. 우리들이 반복해서 읽으면 이해하게 되는 것도 그 덕분이다. 최 교수는 인간의 시냅스를 모방한 신경세포 모방소자에 수많은 필기체를 반복 학습시켜 인간처럼 판독이 가능하게 했다. 정확도는 80% 정도 수준이다.
인공지능 넘어 인공두뇌로
우리들은 ‘인공지능’ 하면 알파고를 떠올린다. 알파고와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흔히들 신경세포 모방소자와 알파고를 비슷하게 생각하는데 분명 달라요. 알파고는 고성능 소프트웨어를 슈퍼컴퓨터에 탑재한 거예요. 인간의 학습형태를 현재의 컴퓨터에 소프트웨어로 구현한 거죠. 반면 신경세포 모방소자는 인간의 학습형태를 아예 하드웨어로 구현한 겁니다.”
인공지능(AI)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를 통해 이미지를 구별하는 방식을 사용하지만, 신경세포 모방소자를 사용하는 인공두뇌 시스템은 하드웨어 자체가 이미지를 학습 판단할 수 있다.
신경세포 모방소자를 활용한 인공두뇌 시스템을 이용해 사람의 실제 필기체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시뮬레이션 한 결과, 6만 번 반복 학습을 통해 서로 다른 필기체 이미지를 기억하고 구별해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신경세포 모방소자가 수많은 반복 학습을 하고 나면 그것을 기억한다는 뜻이다. 기존 신경세포 모 방소자는 균일하게 제작하기 어려웠지만, 최 교수는 탄소나노튜브 소자를 이용해 모방소자 사이에서 생길 수 있는 간섭 현상을 없앴다.
신경세포 모방소자의 소재인 탄소나노튜브는 구리보다 전도율도 높고, 실리콘보다 강도가 세다. 덕분에 무한한 응용이 가능하다. 컴퓨터 트랜지스터가 될 수도 있고, 신경세포도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탄소나노튜브가 차세대 반도체 물질로 각광받는 이유다. 이러한 신경세포 모방소자 연구 개발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을까.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지만, 초기 연구인만큼 살펴볼 자료가 부족하다는 것 정도가 아쉬웠죠. 좋은 결과가 나와 감사할 뿐입니다. 카이스트 시절 룸메이트였던 김성호 교수와 함께 연구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더 다양한 연구를 하고 싶습니다. 국민대 학생들도 석박사 연구과정에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두뇌처럼 적은 전력으로도 고속연산이 가능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정보처리까지 가능한 신경세포 모방소자.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스마트로봇, 무인자동차 등 지능형 시스템에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신기술의 접점에 선 그가 만들고 싶은 건 무엇일까.
“제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연구는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건강과 복지 나아가서는 헬스케어 분야에 도움 이 되고 싶어요. 성능개선보다 우리네 삶에 직접 도움이 되는 걸 하고 싶어요.”
국민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 지 5년 차가 됐지만, 최성진 교수는 아직도 ‘가장 좋은 방향을 찾고 있는 중’이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연구 트렌드도 파악해야 한다. 집중은 필수다. 주어진 시간에 모든 것을 해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 학생들이 뭔가 하나라도 얻어가길 바라는 책임감 때문에 모진 소리를 할 때도 있다고. 엄격한 교수로 알려진 그에게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요즘 학생들은 너무 현실적인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목표를 잡고, 정해진 틀을 벗어나려 하지 않죠. 내가 생각 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는데, 아니 사실 꿈은 더 크게 잡아야 그 비슷한 것이라도 이룰 텐데 너무 현실적인 한계를 두는 것 같아 아쉬워요. 대학 생활 4년을 알차게 보내면 인생이 바뀝니다. 교수님도 좀 괴롭히고요. 이상한 질문 한다고 혼내는 교수님은 없어요. 해도 안 된다고 포기하기 전에 진짜 노력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믿고 노력해서 원하는 인생을 열어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