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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두드리면 속보이는 냉장고… 박수 많이 받았어요" / 노창호(산업디자인학과 80) 동문

LG전자 노창호 디자인센터장
프리미엄 家電 '시그니처'는 단색에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
"고객 중심의 가치가 드러나는 간결한 디자인, 그게 LG 철학"

"똑똑."

지난 1월 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 전시회 CES에서 데이비드 반더월 LG전자 미국법인 마케팅총괄이 신제품 'LG 시그니처' 냉장고 오른쪽 상단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투명창 안에 불이 켜지더니 냉장고 내부가 환히 들여다보였다. 냉장고 문을 열지 않고서도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한 시스템. 1000여명의 기자 사이에서 탄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행사장 앞줄에 앉아있던 노창호(53) LG전자 디자인센터장(상무)의 어깨가 으쓱해졌다.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박수를 치더라고요. 지금까지 수많은 행사에 참여했지만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습니다. 냉장고 말고도 2.57㎜ 두께의 올레드 TV를 소개할 때도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양재동 LG전자 서초 R&D 캠퍼스에서 노창호 센터장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LG전자가 2년간 기획해 올 초 야심 차게 내놓은 프리미엄 가전 통합 브랜드 'LG 시그니처'의 진두 지휘자다. LG 시그니처는 LG전자가 디자인 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난 2014년 발족한 디자인위원회의 첫 작품이다. 노 센터장의 어깨도 그만큼 무거웠다. 일단은 제품의 본질에 집중하기로 했다. "냉장고는 식품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것, 세탁기는 원하는 세탁 코스를 빠르게 완료하는 것, TV는 화면에 집중하는 것이 제품의 본질적 기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품의 속성에만 치중하고 겉치장은 최대한 배제했지요."

그 결과 출시된 LG 시그니처의 냉장고·TV·세탁기·공기청정기는 하나같이 메탈, 흰색, 검정 등 깔끔한 단색조의 군더더기 없는 모양새다. 노 센터장은 "프리미엄 제품인 만큼 오래 쓸 수 있도록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택했다. 색상도 업계에서 '타임리스 컬러(timeless color)'라고 부르는 질리지 않는 색상을 택했다"고 말했다.

노창호 센터장은 국민대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1984년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에 입사했다. 산업화 바람을 타고 자동차, 전자제품 산업 붐이 일던 시절이었다. 자연히 산업디자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입사 동기들이 컴퓨터, 비디오, TV 등을 디자인하겠다고 할 때 그는 냉장고팀에 지원했다. "당시 선배들은 '냉장고 디자인'이라고 하면 핸들, 배지(로고) 같은 것만 디자인하라고 시켰어요. 그런데 저는 냉장고의 핵심은 내부라고 생각했어요. 80년대 식품 문화는 지금과 달랐죠. 계란도 6~10개씩 팔던 때가 아니라 서른 개 한 판씩 팔고, 막 1리터짜리 콜라가 나오던 시절이었어요. 냉장고 용량이 커져가던 시절, 그런 식품들을 어떻게 하면 냉장고에 좀 더 효율적으로 수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연구했었지요."

그는 1984~94년 냉장고팀에서 일했다. 냉장고 디자인팀장도 맡았다. '금성 전천후 냉장고' 'LG 김장독 냉장고' 같은 히트작이 그의 손을 거쳤다. 이번 'LG 시그니처' 냉장고는 그간의 노하우가 집약된 제품. 노창호 센터장은 "아무리 좋은 냉장고라도 문을 자주 여닫다 보면 앞쪽에 놓인 식품의 온도가 급변하면서 신선도가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가급적이면 냉장고 문을 여는 횟수를 줄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냉장고 문을 여는 것은 내용물을 꺼내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뭐가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문을 열지 않아도 '내장'을 확인할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단 평소에도 안이 환히 들여다보이면 민망하니까 사용자가 원할 때만 속이 보이도록 했지요. 그래서 탄생한 게 문을 '똑똑' 두드리면 불이 켜지는 '노크 온 시스템'입니다." 산업디자인이란 형태의 아름다움과 기능의 효율성 간의 싸움. 냉장고 디자인에서도 문을 투명하게 만들면서 어떻게 내부 온도를 차갑게 유지할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냉장고 내·외부 온도 차에도 불구하고 투명창에 이슬이 맺히지 않도록 한 것도 기술력의 승리다.

냉장고 이후 노창호 센터장의 관심은 세탁기로 옮아갔다. 1996~2002년 세탁기 디자인팀장을 맡았다. LG 세탁기의 대표작인 '통돌이 세탁기'와 북미 수출용 '터보드럼 세탁기' 등을 디자인했다. LG 시그니처 세탁기에선 편리성과 내구성에 초점을 맞췄다. "세제를 한 달치 넣어놓고 세탁 코스에 맞게 세제가 자동으로 분사되도록 설계했어요.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 법랑 소재를 사용하기도 했지요."

TV에는 몰입감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화면 외의 다른 요소를 생략했다. 공기청정기는 공기 정화 과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상단을 투명하게 만들어 비 온 뒤의 청정한 기운을 연상시키도록 디자인했다.

LG 시그니처 제품은 이제 시판 단계. 냉장고, 세탁기, TV, 공기청정기 외에 다른 제품도 계속해서 출시할 계획이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노 센터장은 LG전자 디자인경영센터의 철학으로 답을 대신했다. "고객 중심의 본질 가치가 드러나는 간결한 디자인. 그것이 우리의 철학입니다."

 

원문보기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4/29/201604290214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