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지진 등 재난이 발생하면 일상생활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권리들도 사라진다. 중계기가 고장나면서 인터넷은 물론, 전화까지 먹통이 되는 것이다. 이때 외부와의 연락이 차단되는 건 일반인뿐만 아니다. 그들을 구하러 간 구급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지원 요청을 하지 못해 더 많은 인명 피해를 입을 수 있다. 이를 해결하고자 국민대학교 전자공학부 박준석 교수는 재난안전정보통신망을 개발했다. 그는 이 기술을 통해 공공복지에 도움을 주는 것은 물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안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그의 아름다운 기술 개발 스토리를 지금 소개한다.
재난안전정보통신망, 소방관의 안전을 책임지다!
국민대 박준석 교수 연구팀은 2015년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에서 주관하는 사회문제해결형 기술개발사업에 최종 선정되었다. 올해로 3년째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재난·재해 상황이 오면 가장 먼저 전원이 끊기고 통신은 먹통이 되잖아요. 또한, 소방청에서 사용하는 무선 채널도 몇 개 안 돼요. 열악한 상황이죠. 어떤 상황에서든 통신이 될 수 있게끔 이동형 통신 장비를 개발한 거죠.”
소방대원들이 갖고 다니는 전용 통신 인프라 장치, 즉 이동형 게이드웨이 및 AP다. 재난 재해 현장에 소방대원들은 이 장치를 적합한 위치에 던져놓으면 된다. 이것이 무전기와 와이파이를 연결해주는 공유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재난재해 현장에서 기계가 손상되진 않을까.
“이동형 AP는 현장에 던져놓는 형태라 튼튼하게 만들었어요. 아무리 뜨거운 화재 현장이라도 최대 몇 시간은 버틸 수 있죠. 화재 진압 후에 중계기를 회수하면 좋지만, 못 찾아도 걱정할 것 없어요. 그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제작했습니다.”
또한, 어두운 현장에서 조명을 확보할 수 있는 라이트 라인도 개발했다. 전선 안에 LED가 박혀 있어, 불빛이 나오는 전선이다. 라이트 라인 안에는 통신 기능이 들어있다. 와이파이, LTE, 무전기 신호들이 외부와 연결된다. 또한, 소방대원들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장비도 개발했다. 소방대원이 몸에 지니기 편하도록 성냥갑만한 크기로 제작됐다.
“소방원의 위치가 갑자기 변한 것은 구조적인 변화로 인한 피해가 있는 거잖아요. 이때 이 대원에게 무전을 켜서 확인할 수 있죠. 소방대원들의 위치는 이동형 관제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소방대원들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죠.”
재난안전정보통신망은 보완, 실증 검증을 거친 뒤 예산 신청 및 승인 단계를 거친다. 상용화까지 3~4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공복지를 위한 기술 개발
재난안전정보통신망은 연구 초기 단계부터 소방대원들에게 직접 피드백을 받아 수정·보완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박 교수는 소방대원들의 훈련 현장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한여름에 공기가 잘 통하지 않는 소방복을 입고 거대한 소방호스를 짊어지고 훈련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박 교수는 기술 개발의 큰 동기를 부여받았다.
박 교수가 개발에 매진하는 또 다른 기술이 있다. 바로 고중량(Heavy Duty) 드론이다. 그는 초등학교 어린이 한 명이 누워도 될 크기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이보다 더 큰 드론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우리나라에 고층 빌딩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이를 대상으로 초고층 물류 배송이나 화재 진압에 쓰기 위해 만들었어요. 나아가 CCTV 시장을 이 드론으로 대신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고성능, 고중량 드론의 특징은 사람이 타서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2시간 정도 운행할 수 있으며, 300km 정도 운행할 수 있다. 3개의 드론이 협력 비행을 하면 40층 이상까지 소방호스를 가져가 화재 진압에 사용할 수 있다.
“공공복지를 위한 기술이라고 하기엔 거창한 표현인 것 같고요. 다른 건 없어요. 산업 창출을 통해 학생들의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를 진행하면서 소방대원들의 환경이 개선되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어요.”
엔지니어링으로 기반으로 한 사업가
박준석 교수는 국민대학교 전자공학과 87학번이다. 학사뿐만 아니라 석사, 박사까지 모두 국민대에서 마쳤다.
“얼마 전 개봉한 영화 <1987>을 보면 아시겠지만, 학생으로서 누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시대였어요. 하지만 전자공학도로서 좋았던 점이 있다면 다양한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 사업 변혁을 현장에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는 거죠.”
그는 전자공학과로 진학한 이후, 학업에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보니 교수가 됐다며 웃어 보였다. 그는 “기술을 단순히 개발하는 것에만 끝내고 싶지는 않다”며 기술 개발에 대한 철학과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옛날에 한 학생이 사이언스와 엔지니어링의 차이를 묻더라고요. 그래서 사이언스는 경제성보다 학문에 지향점을 둔다면, 엔지니어는 경제성이 담보되는 기술이라고 했죠. 그랬더니 엔지니어링을 하는 교수님은 경제적 이익을 얼마나 얻었냐고 되묻더라고요. 생각해보니까 내가 개발한 기술로 기업들이 잘되긴 했지만, 내가 경제적 이윤을 얻진 못했더라고요. 그건 곧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이러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했죠. 그래서 내가 기술개발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모범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직 우리 나라에서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한 유명한 사업가는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전문 엔지니어와 엔지니어링을 기반으로 한 사업가가 되고 싶은 제자들에게 줄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엄마에게서 독립하라”는 농담을 내던졌다.
“대학 진학부터 졸업 후 진로까지 부모님이 선택해준 길로만 가는 학생들이 있어요. 그들에게는 꿈을 가지라고 말하기 힘들어요. 부디 세상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진짜 하고 싶은 걸 찾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 같은 기성세대는 학생들이 어떤 걸 하고 싶어하고, 할 수 있는지 잘 기다려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