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최경란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
서울디자인재단은 지하철 동대문역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발길은 곧장 사무실로 향하지 않고 반대로 돌아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통과한 다음 다시 동대문역을 지나 대략 1㎞를 더 걷는다.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은 서울디자인재단의 수장이며 개관 5주년을 앞둔 DDP를 이끌고 있는 최경란 대표이사의 아침 모습이다. 지난해 4월 취임해 10개월 남짓 이어온 비밀스러운 출근길에 대해 최 대표는 “디자인계의 아이콘인 이곳 DDP를 지날 때 내가 가진 소명감이 더 단단해지고 디자인에 대한 생각들이 돋워진다”면서 “분명한 존재감 속에 명성을 쌓아가는 이 공간을 더욱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운영할 것이라 되뇐다”고 말했다.
그리는 것에 재능을 보였지만 만드는 것을 더 좋아했다. 집안에 예술가나 디자이너가 한 명도 없었기에 홀로 갈 길을 개척했다. 서울대 응용미술학과를 택했다. 공예와 시각예술부터 자동차 모듈을 만드는 공업디자인까지 다양하게 포괄적으로 배웠다. 바우하우스(1919년 독일에 설립돼 1933년 폐쇄된 교육기관으로 현대 디자인과 건축의 근간을 만든 곳)의 정신을 배우면서는 공공성과 공유의 가치에 이끌렸다. 어릴 적 항상 손님이 북적대는 큰집에 살았던지라 쓸모 있는 물건이 좀 더 많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전공을 결정할 시점에 문득 떠올랐다. 그리하여 최 대표는 예술에 방점 찍힌 공예가 아닌 대량 생산을 염두에 둔 산업디자인으로 기울었다. 환경과 공간에 관심이 많았기에 스트리트 퍼니처, 즉 공공디자인에 관한 논문을 썼고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시카고에서 공부할 때 디자인의 창의적 작업 일환인 ‘전략과 플래닝(planning)’에 관한 수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에 각각 아침 메뉴를 제안하라는 식의 과제를 주더군요.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방향을 수립하게 하는 이 방식이 훗날 디자인 컨설팅을 제공하는 데 도움됐어요. 저는 디자인을 의뢰받으면 먼저 기획을 함께하자고 합니다. 제품 개발의 성공은 기획이 먼저라는 ‘전략적인 마인드’를 갖게 됐어요.”
유학에서 돌아온 그의 졸업작품을 본 한 주방가구 회사가 디자인을 의뢰했다. “주방가구는 주거·음식문화와 관련된 것인데 주문받은 대로라면 나는 멋지게 꾸미는 것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엄포를 놓은 그는 “나와 함께 일하려면 사용자 조사부터 해달라”고 ‘역주문’했다. 당돌한 젊은 디자이너가 제시한 ‘사용자 중심의 시장’ 개념을 이해해준 회사는 부엌만 보는 게 아니라 주거환경의 미래 방향까지 내다보는 곳이었다. 인연이 됐다. 그녀는 싱크대만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후드·인덕션·배관 등 전반에 관여했고 회사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최 대표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 기업과도 디자인 컨설팅으로 협업하며 활동 반경을 넓혔다. 국민대 디자인학과 교수가 됐고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리는 서울디자인한마당 총감독을 거쳐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으로 활약한 후 이곳 서울디자인재단을 맡게 됐다. 디자인을 단지 보기 좋은 외형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취임 10개월 차 소감을 묻자 “밤에 동대문 와 봤느냐”고 반문한 최 대표는 DDP 개관 5주년, 재단 설립 10주년, 바우하우스 100주년의 해를 강조하며 “DDP를 24시간 불 밝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한밤중 DDP 주변에는 전국 각지에서 온 버스가 즐비합니다. 의류 관련 상인들과 밤 쇼핑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곳이기에 상인들과 디자이너, 시민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해요. 일단 불을 켜야 합니다. 호주 시드니 콘서트홀이 디지털 영상으로 건물 외관에 미디어 파사드를 만든 것처럼, 프랑스 리옹의 ‘빛 축제’처럼 DDP를 옥외 전시장으로 만들 수 있죠. 단지 빛만 쏘는 게 아니라 프로그램을 개발해 이벤트를 만들면 관광에도 기여하고 오가는 시민들도 즐길 수 있으니 동대문 상권 활성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DDP는 동대문에 지속적인 창의력의 힘을 주는 곳이니 24시간 깨어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최 대표가 DDP라는 건물 하나만 보고 ‘빛’을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는 “동대문 인근 조명상가가 밀집돼 있는 을지로조명거리가 있다”고 운을 떼며 “DDP의 빛과 을지로를 연결하면 조명 디자인과 리빙 디자인의 산업적 모색이 가능해 지역 상생, 청년 디자이너의 일자리 창출과 도심 제조업에도 힘을 더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어 최 대표는 “국내총생산(GDP) 상승 시점에서는 라이프 스타일이 중시돼 디자인에 대한 욕구가 부각된다”고 강조하며 “우리 주거문화에서 상대적으로 취약한 조명 분야를 두고 서울지역 상권의 제조업과 DDP가 산업적으로 협력한다면 국제적 수준의 디자인 발전과 상생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비전은 명확했다. “DDP는 아시아의 디자인을 발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창의력이 전시에만 머무르는 게 아니라 산업과 유통, 매출로 이어져야 합니다. 디자인 발신의 역할을 뮤지엄이 한다면 우리 재단은 이 디자인을 산업으로 활성화하고 경제로 연결해 DDP를 비즈니스 허브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의 DDP일 뿐만 아니라 아시아 디자인 산업의 메카가 돼야 하며 나중에는 서양에서도 ‘디자인을 보려면 서울 DDP에 반드시 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시작점에 지금 우리가 있습니다.”
서울디자인재단을 대표하는 DDP를 두고 처음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세계적 건축가 자하 하디드(1950~2016)의 전성기를 대표하는 유작으로 세계적인 아이콘이 됐고 어느덧 도시의 상징이 됐다. “현재 서울 관광객의 최다 방문지가 바로 DDP입니다. 그전에는 고궁이었죠. 뮤직비디오나 CF에도 자주 등장했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가장 많이 태그되는 명소죠. 곡면을 이루는 4만5,133개의 각기 다른 마감재를 국내 기업이 만들어낸 것도 기록적입니다. 그런 건축적 측면이 각광받았다면 재단은 그 속을 어떤 콘텐츠로 채울까 분주했습니다. 처음 5년간 간송문화재단의 소장품 기획전으로 우리 문화의 DNA를 보여줬다면 올해부터는 그 기반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미래로 향하는 한국 디자인을 보여주는 ‘중간 역할’로서의 전시를 선보일 것입니다. 세계적인 디자인박물관과 협업도 하고 자체 기획전도 열 거예요. 우선 유럽의 유명 디자인 뮤지엄을 비롯해 자신의 브랜드를 가진 디자이너 폴스미스 전시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순회전 성격이 있지만 우리 자체기획으로 로컬라이징(localizing)해야죠.”
더불어 동대문의 역사성을 재차 강조한 최 대표는 “원래 여기가 동대문운동장이었으니 전국체전 100회의 해인 올해는 ‘스포츠’를 통해 서울다움, 서울 라이프를 보여줄 것”이라며 “국내 디자이너 및 아티스트와 공동으로 오픈거버넌스(Open Governance) 방식으로 운영해 새로운 디자인 운동을 발신하는 곳으로 지원해 장기적으로는 상품개발과 뮤지엄 전시, K디자인이 K컬처·K팝과 협력하는 디자인 중심의 융복합 콘텐츠를 선보이는 곳으로 이끌 것”이라고 밝혔다.
“DDP를 디자인한 하디드가 ‘환유의 풍경’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흥인지문’ 이름의 갈지(之)자가 뜻하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구릉과 일맥상통해요. 그런 DDP는 드나들고 소통하며 공유하고 공공을 지향하는 곳이죠. 디자인을 통해 각박한 삶의 틈에서 망중한을 찾고, 문화로 자신의 격과 자기다움을 찾고 싶을 때 DDP로 오면 좋겠어요. 이탈리아 밀라노의 두오모, 독일 쾰른성당처럼 DDP가 우리의 소중한 미래자산이 될 겁니다. 우리 자부심의 시작점으로 만드는 일을 이제 시작합니다. 지난 5년이 시범가동이었다면 이제는 대한민국이 자랑스러워지는 공간으로 커가는 시기입니다. 어디를 향할지 방향키를 잡고 먼 길을 나섭니다. 오는 3월 DDP 개관 5주년 기념 때도 새로운 소식 들려드릴게요. 기대해 보세요.”
출처 : https://www.sedaily.com/NewsView/1VE7OVAMG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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