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달라진 것들 중에 시험이 있다. 한자리에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을 꺼리면서 시험도 원격으로 바뀌고 있다. 하지만 원격으로 시험을 보면 부정행위를 막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을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만든 유명 개발자 이확영(51),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임성수(51) 교수가 공동 창업한 신생기업(스타트업) 그렙이 내놓았다. 이들이 개발한 원격 시험 시스템 ‘모니토’는 영상과 인공지능(AI)으로 부정행위를 막아준다.
또 그렙은 코로나19 이후 몸값이 치솟은 개발자들의 실력을 평가해 채용을 돕는 시스템 ‘프로그래머스’도 내놓았다. 그렙의 모니토와 프로그래머스를 사용하는 기업이 네이버, 카카오, 쿠팡, 신한은행, 한국전력 등 무려 1,500개사에 이른다. 서울 테헤란로의 그렙 사무실에서 두 공동대표를 만나 이들이 바꾸는 디지털 풍속도를 들어봤다.
그렙의 임성수(왼쪽), 이확영 공동 대표가 자체 개발한 원격 온라인 시험 시스템 '모니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 대표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개발한 유명 개발자이며 임 대표는 국민대 컴퓨터공학과 교수다. 홍인기 기자
-시작은 개발자들의 실력을 평가하는 온라인 시스템이었다. 어떻게 개발했나.
이확영 공동대표: 개발자들의 성장을 돕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조건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 받아 채용되고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비대면 온라인 시스템을 구상했다.
임성수 공동대표: 외국은 개발자를 뽑을 때 경력이 화려해도 반드시 코딩 시험으로 프로그램 작성 능력을 본다. 경력과 실력은 별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내 기업들은 개발자들의 경력을 본다. 그러면 좋은 개발자를 뽑기 힘들다. 경력은 짧지만 실력이 뛰어난 개발자들이 있다. 그래서 2016년에 제대로 된 개발자 평가 시스템 ‘프로그래머스’를 개발하고 2017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했다.
-개발자를 어떻게 평가하나.
이: 개발자들에게 문제를 주고 그 자리에서 코딩을 하도록 한다. 채점도 바로 한다. 채점 시 코딩 완성도와 작성 속도를 본다. 속도는 업무 효율성과 직결된다.
임: 내부에 출제와 평가를 위한 전문팀이 있다. 개발자 경진 대회 수상자들 5명으로 구성된 팀이다. 이들이 출제를 하고 답지를 작성하면 ‘프로그래머스’가 자동 채점한다.
-기업들은 개발자 평가를 스스로 하지 못하나. 왜 그렙에 맡기나.
이: 기업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목적에 부합하는 개발자를 뽑기 위한 출제 난이도 조절이다. 오죽하면 라인 같은 큰 기업도 자체 출제와 평가를 시도하다가 힘들어서 우리에게 의뢰했다. 다른 기업들도 수작업으로 출제하고 평가하다가 비효율적이어서 우리를 찾았다. 우리는 채용 목적에 맞는 개발자를 뽑을 수 있도록 문제의 난이도를 조절해 준다.
-‘프로그래머스’로 평가한 개발자는 얼마나 되나.
임: 지난해 말 기준으로 누적 30만 명이다. SK, LG, 카카오, 네이버, 쿠팡, 우아한형제들 등 많은 기업들이 개발자나 교육생 평가를 의뢰했다. 다만 채용 여부는 알 수 없다. 우리는 평가만 해주고 채용 여부는 기업이 결정한다.
-주목을 받은 것은 원격 시험 시스템 ‘모니토’다.
이: 지난해 코로나19가 확산되는 것을 보고 서둘러 ‘모니토’를 개발해 지난해 5월에 내놓았다. 국민대 학생들을 대상으로 시험해 봤는데 교수와 학생들 모두 반응이 너무 좋았다. 모여서 시험 보면 중압감을 느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는데 이런 학생들은 ‘모니토’에 대한 만족도가 높았다.
임: 감독하는 교수들도 한 화면에 응시생들이 모두 보여서 편하다. 특히 객관식이나 단답형 주관식 문제는 시험이 끝나면 바로 자동 채점된다. 서술형 문제만 사람이 채점하면 돼 일손을 덜어준다.
-원격 시험 시스템 모니토는 어떻게 작동되나.
이: 응시자는 구글의 ‘크롬’ 웹브라우저를 이용해 모니토 사이트에 접속해 문제를 풀면 된다. 회원 가입이나 비용은 필요 없고 웹캠과 휴대폰이 필요하다. 웹캠으로 응시자의 정면, 휴대폰 카메라로 옆 상반신과 모니터 화면 등 3가지 영상이 자동 녹화된다. 물론 응시자의 개인정보 제공 동의를 받고 진행한다. 응시자의 3가지 영상이 감독관의 모니터에 실시간으로 표시돼 부정행위를 하기 힘들다.
임: 감독관 모니터에 최대 20명의 응시생 영상이 표시된다. 응시자가 많으면 감독관이 모니터 화면을 페이지 넘기듯 이동하며 감독할 수 있다. 여기에 AI가 응시자의 이상 행동을 발견하면 감독관에게 경보를 보내는 기능도 있다. 그만큼 기업은 편하게 채용이나 진급 시험 등을 진행할 수 있다.
-응시 인원에 제한이 없나.
이: 인원수에 따라 서버 용량이 늘어나는 클라우드 방식이어서 제한이 없다. 카카오의 경우 동시에 1만 명이 프로그래머스로 개발자 코딩 시험을 봤고 우리은행도 한꺼번에 4,000명이 응시하는 시험을 모니토로 진행했다.
그렙의 원격 시험 시스템인 '모니토'에서 응시자들을 감독하는 화면. 그렙 제공
-그렙을 이용하는 기업은 얼마나 되나.
임: 지난해 신한은행, 우리은행, 한국전력, 이마트 등 300여 기업이 모니토로 시험을 봤다. 누적으로 1,500개 기업이 프로그래머스나 모니토를 사용했다. 프로그래머스를 이용한 개발자 교육까지 포함하면 이용 기업이 5,000개사에 이른다. 모 기업은 아예 연회비를 내고 필요할 때마다 수시 채용 시험을 의뢰한다. 그래서 수시 채용 기업을 위한 구독형 서비스도 내놓았다.
-사고는 없었나.
이: 컴퓨터에 설치된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가 모니토의 작동을 막아 감독관 화면에 영상이 보이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 적이 있다. 이런 문제들이 발생하면 고객지원팀에서 즉각 문제를 해결한다.
-유사한 원격 시험 서비스가 있고 다른 경쟁자가 나올 수 있을 텐데.
임: 유사 서비스의 경우 응시자가 늘면 시스템이 느려진다. 그래서 이용하던 기업들이 우리 쪽으로 많이 넘어왔다. 관련 기술을 비슷하게 개발할 수 있지만 수많은 시험을 치르며 쌓은 운영 경험을 따라오기 힘들다. 아직 그런 경험을 가진 곳이 우리밖에 없어서 독보적 경쟁력을 갖고 있다. 특히 개발자 평가 시스템 모니토는 시장의 90%를 점유했다.
-코로나19가 길어지면서 원격 시험 시스템이 국가 자격증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없나.
이: 올해 안에 다수의 국가공인 자격증 시험이 모니토를 이용해 온라인 원격 시험으로 전환될 수 있다. 한국공인회계사회에서 진행하는 AT자격시험의 온라인 전환을 논의 중이다. 이 시험은 연간 10만 명이 응시한다.
임: 국민대, 포항공대, 항공대 등이 일부 학과에서 중간 및 기말고사를 모니토로 진행한다. 서강대와 충북대 등 다른 대학들도 모니토 사용을 논의 중이다. 미국은 지난해 대학원 입학시험(GRE),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LSAT), 토플 등 많은 시험들이 온라인으로 전환됐다.
-매출은 어떻게 올리나.
이: 평가의 경우 모니토로 시험을 진행하는 기업으로부터 응시생 1명당 2만 원의 비용을 받는다. 채용의 경우 개발자들이 프로그래머스로 실력을 평가한 뒤 점수와 함께 이력서를 올릴 수 있는 코너를 프로그래머스 사이트에 마련했다. 여기서 개발자 채용이 일어나면 첫해 연봉의 7%를 수수료로 받는다. 인력소개업체보다 수수료가 낮다.
임: 교육은 수강료를 받고 개발자들의 코딩을 직접 봐주는 온라인 개인 교습으로 진행한다. 개발자들을 위한 ‘빨간펜’이다. 올해부터 개발자 교육 의뢰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2019년 연간 전체 매출이 6억 원이었는데 지난해 29억 원으로 급증했다.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 시험이 늘 것으로 보고 100억 원을 예상한다.
-해외 진출 계획은.
이: 지난해 미국 얼바인에 지사를 만들었다. 시험 수요가 많은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모니토를 이용하는 곳들을 늘릴 계획이다. 개발자 평가를 위한 프로그래머스는 ‘코드 크루트’라는 이름으로 바꿔 선보일 예정이다. 올해 말 이후 온라인 교육 서비스도 해외에 내보낼 계획이다.
그렙의 임성수(왼쪽), 이확영 공동대표는 "외국처럼 개발자를 경력이 아닌 실력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며 "해외에서는 화려한 경력의 개발자들도 코딩 테스트를 거친다"고 강조했다. 홍인기 기자
-두 사람은 어떻게 만났나.
임: 서울 상문고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서울대 대학원까지 동기동창이다. 전교 석차를 붙여 놓는 고교에 다녀서 항상 최상위권에 적힌 이름을 서로 잘 알았다.
-이 대표는 '카카오톡' 개발자로 유명하다. 카카오톡 개발 과정이 궁금하다.
이: 삼성SDS의 PC통신 서비스 '유니텔' 사업부에서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함께 일했다. 그때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만났다. 1999년 벤처 붐 당시 삼성을 나와 프리챌로 옮겼다가 네이버로 이직해 5년간 일했다. 2006년 김 의장이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해 모바일 소통 도구를 개발하자며 불렀다. 여러 가지를 개발했는데 3년간 성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0년 카카오톡을 개발해 성공하면서 카카오 기술총괄(CTO)이 됐다.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2013년 카카오를 나와 게임 개발을 위한 에잇크루즈를 창업했다. 그러다가 임 대표를 만났다.
-그렙을 창업한 계기는.
임: 2004년 국민대 컴공과 교수가 되고 나서 학생들이 취업 준비 때문에 코딩 공부를 포기하는 것을 봤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2012년부터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에 학생들을 인턴으로 보내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하지만 한계가 있어서 2015년에 교수를 하면서 소프트웨어 교육업체 코들리를 창업했다. 아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회사였다. 마침 이 대표를 만났는데 생각이 같아서 2016년 코들리와 이 대표의 에잇크루즈를 합병해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다.
-개발자 부족 현상은 언제까지 갈까.
임: 코로나19가 촉발한 비대면 문화와 기업들의 디지털 전환에 가속도가 붙어서 개발자 부족 현상이 꽤 오래갈 것이다.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더 오래갈 수 있다. 개발자는 문제 해결에서 희열을 느끼는 기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행 교육제도에서는 개발자 기질을 스스로 찾기 힘들다. 교육제도가 체험 위주로 바뀌어야 한다.
-좋은 개발자가 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이: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가 주어졌을 때 스스로 해결하고 실현되는 것을 확인하려는 호기심이다. 아울러 필요한 학습을 빠르게 할 수 있는 습득 능력도 있어야 한다. 기업은 개발자들에게 이런 학습 기회를 많이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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