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서울 성북구 국민대에서 테크노디자인대학원 석사과정생 8명과 김민 교수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종로구 보육원 ‘선덕원’의 아이들을 위해 보육원 로고를 제작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남강호 기자
서울 종로구 신영동에 있는 보육원 ‘선덕원’에는 39명의 여자 아이들이 살고 있다. 그중 33명은 관악구 주사랑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던 아이들이고, 6명은 경제적 형편이 어려운 부모가 서울시에 맡겼던 아이들이다. 네 살부터 고3인 열여덟 살까지 서로 의지하며 함께 생활하고 있다.
여러 지원으로 물질적 결핍은 겪지 않는 선덕원의 가장 큰 고민은 그 아이들이 배우고 따라 할 대상이 옆에 없다는 것이다. 1년에 한두 번 와서 선물 주고 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선덕원 진유일(55) 원장은 “그것도 감사하지만 아이들과 소통하며 아이들의 인간적 성장에 도움을 줄 젊은이들과의 교류가 늘 아쉽다”고 했다.
이런 선덕원의 필요에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이 화답했다. 지난가을 디자인대학원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연 전시회에 선덕원 아이들을 초청했다. 대학원생들이 직접 아이들에게 전시를 설명해 줬다고 한다. 국민대 캠퍼스에도 초대해 대학원생과 아이들이 짝을 지어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간식을 먹는 시간을 가졌다. 교류가 활성화되자 선덕원 측에서 보육원을 상징하는 새로운 로고를 만들어 줄 수 있냐고 부탁했고, 국민대 측은 흔쾌히 응했다. 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에 다니는 대학원생 8명은 지난 2학기 각자 5개씩 40개의 새로운 선덕원 로고 후보를 만들었다.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시각디자인학과 이채영씨가 만든 ‘선덕원’의 새 로고. 꽃과 하트, 나비 모양으로 이뤄진 백조 형상의 새 로고는 앞으로 선덕원의 셔틀버스, 홍보물, 옷 등에 새겨진다. /이채영씨 제공
지난 11일 오전 10시 서울 성북구 국민대에서는 선덕원 측에 최종 시안 40개를 선보이는 발표회가 열렸다. 발표회에서는 이채영(23)씨의 로고 시안이 선정됐다. 꽃과 하트, 나비 문양으로 이뤄진 백조 형상의 로고였다. 동화 ‘미운 오리 새끼’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들었다고 한다. 그는 “다른 오리들과 생김새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은 ‘새끼 백조’가 마치 선덕원 아이들 같았다”며 “색안경을 끼고 보육원 출신 취급을 받던 아이들도 각자의 꿈과 희망을 가지고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을 거란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선덕원에 사는 정모(10)양은 새로운 보육원 로고를 보고 “누가 만들어 준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예쁘게 만들었어요?”라고 했다. 김모(15)양은 “새로 바뀐 로고는 ‘선덕원 가족’이라는 데 더 의미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국민대 학생들로부터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크면 국민대에 가고 싶다”고 말한다고 한다.
선덕원과의 ‘동행’을 이끈 김민(62) 교수는 “선덕원 아이들이 옷을 입거나 가방을 멜 때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으면 했다”고 했다. 석덕원의 로고는 아이들의 옷과 목도리, 가방, 셔틀버스에 새겨져 있다. 김 교수는 내년 봄 선덕원 아이들을 모두 국민대에 초청해 시화전을 가질 계획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으로 전국에는 선덕원 같은 아동 양육 시설이 245곳 있다. 거기서 9439명의 아이들이 생활하고 있다. 이 아이들은 보육원에서 성장해 사회에 안착하는 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문가들은 물질적 지원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보육원 아이들을 지원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장경은 교수는 “청년들이 보육원 아이들과 정서적으로 교류하고 이를 지속하는 국민대와 선덕원의 ‘동행’은 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