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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제도 개혁,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 장승진(정치외교학과)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정개특위에서 국회 전원위원회 토론에 부칠 3가지 선거제도 개편안을 확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3개 안은 ①소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 ②소선거구제+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 ③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이다. 몇 달에 걸친 논의 끝에 여전히 3개 안을 놓고 토론을 벌인다니, 과연 시한 내에 가시적 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다. 솔직히 선거제도 개편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갈리기 때문이지 상호 간에 이해와 토론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닐 텐데 말이다.


전원위원회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어떠한 결론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3가지 개편안을 살펴보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감상을 한 가지 끄적여 보고자 한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점은 3가지 안 모두 비례대표를 권역별로 선출한다는 점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방편으로 오래전부터 논의됐던 제도이다. 하지만 정개특위 안에서 흥미로운 점은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지역구와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제 및 개방형 명부제와 패키지로 묶여 있다는 점이다. 이래서야 무엇이 주력 상품인지 아니면 끼워팔기용 미끼 상품인지 헷갈릴 정도이다.


중복 입후보제와 개방형 명부제는 각각 장점이 없지 않은 제도이다. 지역구에 출마한 후보가 비례대표로도 동시에 입후보할 수 있다면 지역구 선거에서 아깝게 낙선하더라도 비례대표로 구제될 수 있고, 이는 다시 유력 정치인들이 소위 험지에 출마하여 정당의 지지 기반을 넓히기 위해 노력할 유인을 제공한다. 개방형 명부제는 유권자가 비례대표 후보에게 직접 투표하고 일정 표 이상을 얻은 후보는 순번과 상관없이 당선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당이 일방적으로 정한 비례대표 순번을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폐쇄형'에 비해 보다 민주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항상 그렇듯이 제도의 취지는 현실에서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 험난한 과정을 거쳐 공천을 따낸 수십 명의 지역구 후보 중에서도 비례대표로 중복해서 공천받는 소수(정개특위 안에 따르면 30%)에 포함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정당이 작성한 비례대표 후보 명부에 올라간 수많은 생소한 이름 중 유권자의 눈에 띄어 상위 순번을 제치고 선택받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다시 말해서 중복 입후보제와 개방형 명부제의 수혜는 중진 의원이나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몇몇에게 집중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반면에 각 정당에서 주류에 속하지 않는 집단을 대표하는 후보는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


모든 선거제도는 불공정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단순히 누군가에게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정개특위의 선거제도 개편 노력을 싸잡아서 폄훼할 생각은 없다. 선거제도 개혁은 필요하며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두 가지 안이 의원 정수 확대를 통한 비례대표 의석 수 증가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대표성과 비례성 강화라는 대의 아래에 다른 고려가 작동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특히 선거제도 개혁 방향에 대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중복 입후보제와 개방형 명부제는 기존 논의 과정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않았던 사항이라 더욱 그렇다.


그저 이상의 잡소리는 고매하신 의원들의 순수한 의도를 애써 곡해하는 한낱 책상물림의 기우이기를 바랄 뿐이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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