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권도 인정한 현금화 해법 문제점
우리 조치로 관계개선 공 떠안은 일본
전략산업 한일협력 추구 합의도 큰 성과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확대정상회담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서재훈 기자
징용해법과 한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정치권과 여론은 첨예한 대립을 벌이고 있다. 한일대립이 국내정치 갈등으로 전환된 양상이다. 논쟁의 핵심은 2018년 대법원이 내린 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로 집약된다. 알기 쉬운 해결책은 대법원 판결대로 일본 기업의 자산을 강제집행(현금화)하여 배상을 지불하는 것이다. 다만 문제의 복잡성은 징용 이슈가 국제법(한일청구권 협정)과 국내법, 그리고 양국 최고법원 판결이 상충하는 지점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청구권협정 제2조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해결되었다'는 조항을 들어 배상 판결에 불복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현금화'하면 보복조치를 단행할 것을 다짐해 왔다. 청구권협정 제3조는 양국 해석에 이견이 발생할 경우, 중재위를 구성해 해결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중재위 구성을 제안해왔으나 정부는 수용하지 않았다. 징용문제는 '난제 중의 난제'이며 그 누구도 해결하기 어려운 '폭탄 돌리기' 성격의 이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현금화'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은 1+1+알파(한일기업과 국민성금)를 기둥으로 하는 해결책을 시도했으나 반대에 부닥쳐 포기했다. 그런 의미에서 정부가 내놓은 '제3자 변제안'은 과단성 있는 용단이다. 일본 측 피고 기업의 참여를 담보하지 못했고 피해자들의 요구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법적 정합성을 고려하면서도 실효적으로 피해자 구제를 위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해법이라고 평가한다.
이 해법은 정부가 선제적으로 해법의 큰 틀을 마련하고 일본 측 호응을 기다리겠다는 방책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했으니 사죄와 기업참여 문제는 일본 몫으로 남겨둔다는 것이다. 이 결단은 한미정상회담 그리고 히로시마 G7 정상회의, 한미일 연쇄 정상회담에서의 협상력을 높이려는 포석으로 읽힌다. 징용이슈는 '역사전쟁'의 측면도 있지만 국가폭력 피해자의 구제 문제이자 인권문제의 성격도 지닌다. 인권문제 해결에 한국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고 일본의 호응을 압박하는 고차원 방정식이다. 일본 측이 보편가치와 국제규범인 인권문제에 대해 퇴행적 역사 인식을 반복하며 해결을 외면한다면 따가운 국제 여론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관심의 초점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의 과거사 발언은 실망스러웠다. 식민지 문제와 관련해 기시다 총리는 김대중-오부치 선언 등을 언급하며 기존 일본 정부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고만 표명함으로써 '통절한 반성, 진심으로부터의 사죄'라는 직접 표현 대신 간접화법을 사용했다.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진전된 사죄 언급은 없었다. 징용이슈 풀기는 우리 정부의 발표로 완성되었다기보다는 해결을 향한 프로세스에 본격 진입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자기 완결적 해결을 위해서는 채워 가야 할 부분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발표로 공은 일본으로 넘어갔고 일본은 숙제를 안게 되었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복합골절' 상태이던 한일 관계는 '비정상의 정상화 궤도'에 진입하는 큰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양 정상이 10년간 중단되었던 셔틀 외교를 재개하기로 합의한 것은 큰 성과다. 미중 신냉전 구도, 북한의 핵 미사일 위협이 가중되는 국제정세를 감안할 때 양국은 공조 협력을 통해 획득할 수 있는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고 있다. 정상회담을 통해 징용, 수출규제-화이트리스트 제외, 지소미아 문제 등 3대 갈등 현안 해결의 길을 연 것도 일정한 수확이다. 경제안보 협의체 구성, 안보대화 채널의 복원, 인적 교류의 확대 등 미래 협력에 합의한 점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더욱이 이번 회담에서 글로벌 공급망 교란 속에서 한일 간 반도체, 배터리, 전기차 등 핵심산업 분야 협력을 추구하기로 한 점은 높이 평가된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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