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혹시 당신이 형님? / 이은형(경영학부) 교수

“이 통 안에 있는 콩의 수는 몇 개일까요?”


30㎝ 높이의 유리병에 강낭콩이 절반 넘게 채워져 있다. 콩의 개수를 맞추는 사람에게 상금을 주기로 하고 실험을 시작한다. 다섯 명씩 그룹을 만들어, 서로 의논은 하되 각자 자신이 생각하는 예측치를 적기로 규칙을 정한다. 처음에는 의논 없이 예측치를 적고, 이후 3분 간격으로 다섯 차례 그룹 토의를 거쳐 예측치를 적는 방식이다. 총 여섯 번의 예측치를 자신의 답안지에 적게 된다. 어느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콩세기 실험이다.


급속하게 달라지는 경영환경
‘형님’의 결정 따르는 게 옳을까
다양한 의견 조율이 더 중요해

 

 


일러스트= 김지윤 기자 kim.jeeyoon@joongang.co.kr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 횟수를 거듭할수록 전체 평균이 정답인 1616개에 가까워지는 경향을 보이고, 편차도 줄어든다. 그룹 논의를 거듭하면서 정답보다 많게 예측했던 참가자나 적게 예측했던 참가자들이 자기 생각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참가자가 있었다. A 참가자는 첫 번째 예측치를 거의 정답에 가깝게 기록했지만 회를 거듭하면서 정답과 멀어졌다. B 참가자는 엉뚱한 숫자에서 출발했지만 점점 정답에 가까워졌다. A와 B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위해 각 팀의 논의 과정을 검토했다. 사전 동의하에 각 그룹의 논의 과정을 기록했는데 A와 B가 속한 팀의 논의 양상이 매우 달랐다.


A가 속한 그룹의 참가자들은 모두 같은 전공으로 친밀한 사이였다. 다른 참가자에게 반말을 쓰는 ‘형님’이 있었고 나머지 참가자들은 그에게 존댓말을 썼다. 3회차 논의에서는 “형님이 생각하기는 어때요”라는 질문이 있었고 ‘형님’은 “900개에서 1200개 사이”라고 의견을 말했다. 그러자 “에잇, 저는 이걸로 하겠습니다”라며 숫자를 써서 형님에게 보여주는 참가자도 있었다. 형님의 의견에 대부분 동의하는 분위기를 보이면서 네 번째 논의부터는 거의 의견을 주고받지 않았다.


반면 B가 속한 그룹의 참가자들은 공학·음악·인문학 등 전공이 다르고 잘 모르는 사이였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고, 다섯 번째 논의에 이르기까지 상대의 의견에 쉽게 동의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콩의 개수를 추정하려고 노력했다. 지속적으로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라고 물었고 각자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려고 애썼다.


예상대로 A 참가자 그룹의 추정치는 B 참가자 그룹의 추정치보다 정확도가 떨어졌고, 특히 ‘형님’이 제시한 기준을 벗어나지 않았다. 서울대 박선현 교수는 몇 차례의 ‘콩세기 실험’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전제 조건을 발견했다.


먼저 구성원의 다양성이다. 아무도 정답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추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배경의 구성원이 각자의 지식과 경험에 따라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도움되었다. 둘째, 서로 친밀한 사이면서 지배적인 의견을 내는 ‘형님’의 존재가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형님’의 의견을 묻고 그 의견에 기꺼이 따르려는 분위기가 그룹의 의사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일찌감치 합의에 이르렀다. 이는 구성원들이 더 열심히 궁리하면서 서로의 생각을 나눌 기회를 차단했다.


셋째, 상대의 의견에 동의해야 할 압박감을 느끼지 않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중요성이다. 느슨하게 연결되고 서로 존대하는 사이에서는 합의에 대한 압박을 받지 않고 주어진 토론 기회를 최대한 활용한다. 자신의 답안 카드에 자신의 추정치를 독립적으로 적는다.


회사로 공간을 이동해보자. 환경 변화가 빠르고 문제 원인이나 결과가 간단하게 규명되지 않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해결책이 쉽게 나오지 않는, 복잡성이 높은 문제를 정의하고 답을 찾으려 할 때 모두의 경험과 지식이 최대한 발휘되는 것이 유리함을 기억해야 한다. 모두의 경험과 지식은 다양할수록 더 나은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자신의 의견을 독립적으로 마음껏 피력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우리에게 ‘형님’이 필요한 때가 있었다. 앞서가는 기업을 빨리 따라잡아야 할 때, 선진기술을 최대한 빨리 익혀서 모방해야 할 때, 정해진 길을 따라 낭비 없는 실행이 필요할 때 우리는 경험 풍부한 형님의 지휘를 따르면 되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속도’보다 ‘혁신’이 더 중요해지는 순간에 자주 직면한다. 모방으로는 충분치 않은, 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문제 정의와 창의적인 해결책을 찾아내야 하는 순간 말이다. ‘형님’의 의견 제시가 자칫 ‘정확하게 틀리는(precisely wrong)’ 의사결정 오류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여러분이 지금 내려야 할 의사결정이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잘 살펴야 한다. 그 의사결정에서 본인이 ‘형님’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지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무엇보다 구성원들이 상사를 형님으로 모시면서 섣부른 ‘만장일치’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경계하기를 당부한다.


이은형 국민대 교수·국민인재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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