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무장반란 프리고진을 푸틴이 살려둔 이유 / 강윤희(유라시아학과) 교수


그래픽=강준구기자

 

아직도 의문 계속되는 반란 사태
푸틴보다 먼저 움직인 프리고진
'바그너 시즌2' 변신 가능성 농후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질 때쯤에 터진 프리고진의 무장반란 소식은 전 세계를 러시아 사태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바그너 용병의 모스크바 진격이 하루 만에 끝난 지 벌써 2주나 지났으니, 4주에 한 번씩 쓰는 칼럼 일정상 다소 뒷북치는 글을 쓰게 되었다.

 

일단 이번 사태는 아직까지도 여러모로 미스터리하다. 바그너 용병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과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 간의 갈등이야 이미 여러 차례 노출된 바 있었지만, 프리고진은 왜 이리 무리수를 둔 것일까?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의 중재에 의해 극적 합의를 보았다고 하는데, 어떤 이면 합의가 있었을까? 프리고진의 행동을 '반역'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던 블라디미르 푸틴은 왜 갑자기 프리고진과 바그너 용병에게 사면을 약속했을까? 그런데 벨라루스로 간다던 프리고진은 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나타났고 어떻게 압수당한 무기와 자산을 돌려받았을까?

 

앞뒤가 안 맞는 이 상황을 놓고 온갖 추측과 해석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누구도 정확한 정보나 신빙성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니, 기존 러시아 지식과 뉴스에 보도되는 정황 증거를 기반으로 각자 나름대로 추측과 판단을 하게 된다.

 

일단 푸틴에게 바그너 용병은 무엇을 의미할까로부터 풀어보고자 한다. 체첸전부터 시리아내전까지 바그너 용병이 러시아 국내외에서 꽤 오랫동안 러시아 정부나 정규군이 할 수 없는 '더러운' 일들을 해주었다는 점에서 바그너그룹은 푸틴에게 편리한 비공식 군사조직이었다. 이번 전쟁에서의 성과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전쟁을 통해 한껏 단련된 바그너 용병들은 이미 너무 수적으로 커져버렸다. 이들이 직접적으로 푸틴 휘하에 있지 않는 한 그에게 위협요소가 될 수 있다. 아마도 바로 이점 때문에 바그너 용병 조직을 해체해 국방부 휘하에 넣으려 했던 것 같다. 바그너 용병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푸틴은 바그너 용병 그룹의 '자율성'을 오랫동안 허용할 생각이 없었던 듯싶다.

 

프리고진도 이러한 조치가 바그너 용병 조직의 해체를 가져온다는 것을 간파했을 것이다. 조직의 생존이 걸린 문제라고 생각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고, 이 때문에 모스크바로의 진격이라는 무리수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서의 진격이 모스크바를 공격해서 푸틴 정권을 몰락시킨다 그런 의미는 아니다. 푸틴 제거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읍소나 청원에 가까웠을 듯싶다. 그래서 프리고진 자신은 이를 '평화로운 행진'이라고 명했다. 물론 무장반란 세력이 모스크바를 향해 북진해올 때, 푸틴과 러시아 정부 고위인사들이 위협을 느끼고 잔뜩 긴장했던 것은 사실이다. 푸틴의 초기 대응 연설을 보면, 평상시와 달리 꽤 감정이 실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바그너 용병과 러시아 국방부 간의 갈등 수준을 넘어선다. 흔히 국가는 폭력, 강제력을 독점한다고 하지 않는가? 푸틴이 바그너 해체를 모색한 것도 지금이 그때라고 봤던 것 같다. 그러나 프리고진의 적극적 저항과 선제적 움직임으로 인해, 일단 현 상황에서는 프리고진이 원하던 바를 얻은 것 같다. 그와 그를 따라가는 바그너 용병들이 망명차 단순히 벨라루스로 가는 것은 아닌 듯싶다. 새로운 미션으로 시즌 2를 장식할 모양이다. 압수한 무기와 현금을 프리고진에게 돌려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고 보인다.

 

푸틴은 과연 '반역자' 프리고진을 살려둘까? 내가 아는 푸틴은 지금 이 순간, 전쟁의 와중에, 반란을 이유로 프리고진을 암살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프리고진은 푸틴을 비방하거나 그에게 직접적으로 도전한 적이 없다. 그는 게임의 룰을 누구보다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나 다른 타이밍에, 다른 이유와 방법으로 그를 정치적, 혹은 물리적으로 제거할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최근 러시아 국영방송에서 프리고진 자택 압수수색 장면을 방영한 것은, 프리고진에게 여러 죄목을 만들어 붙일 수 있음을 암시했다. 푸틴이 원한다면 말이다.

 

강윤희 국민대 유라시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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