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서재는 극과 극이다
처음 제 연구실에 오셨을 때 저 철문을 열고 들어오셨죠? 사실 제 서재는 문조차도 철로 되어있는, 거의 완전에 가까운 방음이 된 공간이에요. 작곡과 교수로서 작곡을 해야 하기 때문에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는 예술, 창작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겁니다. 따라서 제 서재는 세상과, 사람들과 단절된 공간으로서 첫 번째 ‘극’입니다. 이와 반대된 ‘극’은 소통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교수로서 학생들을 많이 만나야하고, 동료 및 많은 예술가들을 만나야하는데 저는 지금 이 공간에서 대화하고 소통합니다. 단절과 소통이라는 서로 반대되는 의미가 공존한다는 점에서, 저의 서재를 극과 극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길일섭 교수님의 서재는 작곡을 하는 주공간이다. 국민대 개교 60주년을 기념하며 작곡한 교향곡은 거의 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대부분 이 서재에서 작업했는데, 도통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때는 때론 직접 절에 들어가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했다. 그렇게 해서 완성된 교향곡, “사실 브람스은 평생에 걸쳐서 교향곡을 단 4개를 썼다고 하는데, 그 말이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요. 난 하나 썼으니 브람스의 4분의 1 쯤은 온 건가. 하하.”
인쇄된 모든 것을 읽고 싶은 로맨틱한 교수님
난 독서를 어릴 때 만화책, 초등학교 때의 무협지에서부터 시작했어요. 중학교 땐 아마 펄벅의 대지에 푹 빠졌었지요. 그 뒤부턴 마치 편집증에 걸린 사람처럼, 인쇄된 모든 것을 다 읽어야 직성이 풀려서 그저 닥치는 대로 많이 읽었어요. 사실 시기에 따라 느끼는 감동은 사람마다 다르지요. 10대가 다르고, 20대는 또 다르고, 지금 50대에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게 많이 달라요. 가장 좋아하는 책을 고르라는 것은 가장 좋아하는 가수, 노래를 고르라는 것 같아서 너무 힘들어요. 그래도 꼭 하나 집어서 이야기 해줘야하나? 어쩌나. 허허.
인터뷰하는 동안 길일섭 교수님은 멋진 피아노 선율과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셨다. 베토벤의 교향곡 제5번인 운명교향곡을 ‘띠디딩동’과 같은 아주 단순한 멜로디에서 시작하여 규칙적인 반복과 변화를 통해 점차 확장하고 또 변형해서 베토벤은 웅장한 교향곡 하나를 완성했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교수님께선 우리는 소위 음악을 감성으로 듣지만, 작곡가는 아마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끊임없이 머리를 쓰며 이성으로 생각했을 것이라며 예술을 창조하는 사람과 받아들이는 사람에겐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술, 이성으로 말하지만 감성으로 듣는다
20세기 초반의 화가 칸딘스키라고, 다들 한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실 칸딘스키는 그림뿐만 아니라 저술에 있어서도 아주 유명합니다. 그 중에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은 대부분 예술을 감성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데, 사실 창조자들은 이성의 표현으로 접근한다고 말합니다. 예를 들면 책은 문자로, 그림은 그림으로, 건축은 건물로, 음악은 음으로 예술을 어떠한 수단과 방식이 짜인 이성으로 표현한다는 것이죠. 사실 감정으로 치우치면 산만하고 갈피를 잡기가 힘들어요. 그러다보면 수용자에게 감동을 주기도 어렵지요. 이 책을 읽으면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이성적인 접근을 해봐야한다는 필요성을 느낄 것입니다.
계속 읽고 싶습니다
작업을 연구실에서 하고 또 수업도 하느라 책 읽을 시간이 사실 많지는 않아요. 대신 집에 귀가하면, TV 대신 책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냅니다. 여행을 할 때는 현대문학상이나 이상문학상 등에서 소개된 단편집들을 많이 읽습니다. 옛날에 잡지가 많이 나오던 시대가 있었는데, 저의 집 화장실 문고는 그 당시의 잡지, 전국에서 보내주는 사보, 여행서 등으로 채워놓았어요. 마치 음식 안 가리고 먹는 것처럼, 책에 있어 저에게 장르는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책과 음악, 끝나지 않을 나의 이야기
작곡가로서 곡을 계속 써야하는데, 비단 책뿐만 아니라 지금 읽는 모든 것들이 영감이 되고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게 주어진 지금 이 공간에서, 책을 읽고 음악을 작업하며 나만의 자양분을 계속해서 쌓고자합니다. 교향곡, 피아노 협주곡 등 여러 곡을 썼지만 앞으로는 더 원숙한 곡을 써보고 싶어요. 그러려면 상당기간 동안 이 안에서 단절되어 있는 상태가 될 텐데……. 이런, 아까 말한 ‘극과 극’에서 어쩌면 한 쪽 극에만 치우칠 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제자들이나 학생들이 찾아와서 제 서재의 문이 잠겨있다면, 작업 중이니 양해를 해주면 참 고맙겠어요.
태백산맥 조정래 ㅣ 해냄출판사 ㅣ 2007년 | 성곡도서관 링크 80년대 분단문학의 대표작 중의 대표작. 이병주의 지리산과 비교해보며 읽어보면 당시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각 소설 속의 주인공의 배경이 다르기 때문에 비교해보며 읽다보면 분단 당시의 문화와 배경 지식을 알 수 있어 젊은이들에게 꼭 추천을 해주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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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이야기 박물지, 유쾌한 발견 성석제 ㅣ 하늘연못 ㅣ 2007년 | 성곡도서관 링크 성석제 씨는 우리학교 목요특강에 한번 방문하셨던 분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에 한 분이다. 따라서 성석제 씨의 책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데, 이 책 역시 유머와 위트가 넘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동서양 고금을 넘나드는 다양한 이야기를 작가 특유의 유쾌한 입담을 곁들여 들려준다. 또한 단순한 유머가 아닌 그 속에 철학과 삶의 진리가 숨어있어 읽는 이에게 강렬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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촐라체 박범신 ㅣ 푸른숲 ㅣ 2008년 | 성곡도서관 링크 생존의 갈림길에서 선 두 남자가 서로 신뢰하며 인간으로서의 길을 걷는 내용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직접 체험하고 경험하는 것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또 그것을 글로써 풀어내야하는 작가만의 고충, 그리고 그 저력과 힘을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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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단지와 잔을 끌어당기며 이문열 ㅣ 아침나라 ㅣ 2001년 | 성곡도서관 링크 작가 이문열의 단편소설집으로 우화 구도소설 등 총 6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이문열 작가의 시선을 느낄 수 있고, 또 당시 일어난 사건들과 논쟁을 그만의 문학적 수사로 풀어냈다. 세상과 소통하려는 이문열의 작가적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어서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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