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유행하는 청춘 특강들을 보면 자기 계발서를 옮겨다 놓은 듯한 이론적인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경험이 묻어나는 진솔한 이야기를 담는 연사들이 인기가 많은 편이다. 과거에 매달리고 또 한 편으로는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를 두려워하는 젊은이들에게 뜬구름 같은 이야기보다는 그들이 직접 겪어온 삶의 이야기가 더 큰 힘이 된다는 뜻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시작하게 된 기사 'Back to the 20s' 의 첫 주인공으로 서정우 교수님을 만나고 왔다. 교수님께서 직접 들려주는 교수님의 20대 이야기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귀기울여보자.
Q. 지난 4년간 한국 회계기준원장 위임에 이어 이번에 국제회계기준위원회(IASB) 위원으로 선임되었다는 반가운 소식 들었습니다. 한국인 최초라는 점에서도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직접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한국의 국력이 회계 분야에서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다는 점이 가장 의미가 큽니다. 이제는 어떤 분야든 국제적인 질서나 제도가 필요한 시대인데 우리나라도 그러한 과정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기쁘죠. G20 정상회의 개최를 통해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의 틀을 갖추어 가는데 기여를 했다는 점과 최근 세계은행의 총재 역시 한국계 미국인 김용 박사가 선임이 되는 등의 사례를 보면 한국이 이제 주체적으로 국제 활동을 참여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뜻 깊게 생각합니다.
Q. 경영대학 학생들로부터 교수님께서 매우 유쾌하시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요. 교수님 학창시절도 왠지 즐겁게 보내셨을 것 같은데 대학생활은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학창시절에는 신나게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나네요. 그 때 당시 사회적으로도 혼란스러운 분위기이기도 했고 당시 불안한 시기에 학습에 집중하기 보다는 친구들과 즐겁게 어울려 다녔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 당시에는 매우 일방적인 교육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교수가 된 지금도 그 부분을 극복하려고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수업도 상호작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다만 내가 좀 더 먼저 시작 했을 뿐이고 교수와 학생 모두 함께 공부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공부가 즐거워야 하고 서로 배워 나갈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수업들도 가능하면 예습을 꼭하라고 하고 있습니다. 저도 학교 다니면서 예습 복습을 열심히 할 만큼 학과 공부에 열심이진 않았었지만 지나고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아마 그랬더라면 지금 더 훌륭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요.(웃음)
Q. 등록금 걱정, 취업걱정, 요즘 보면 걱정하고 고민하느라 힘든 대학생들 많이 보시잖아요. 교수님께서 20대 얻을 때는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난관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갔었는지.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돈이 왜 없을까 하는 이런 금전적인 부분이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지금까지 돌이켜 보았을 때 가장 돈이 많이 필요한데 가장 부족한 시기가 대학 시절이 아닌가 싶어요. 저도 대학생이 되었을 때 해외여행도 가고 싶고 여기저기 가보고 싶은 곳도 많은데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따랐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엔 과외나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돈도 벌고 해보았지만 지나고 나니 세속적인 욕심을 위한 자금의 확보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학년 때는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주로 학교에서 생활했었죠. 고민 해결을 위해 극복했다기 보다 생활패턴을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해결했다고 봅니다.
Q. 20대 때 교수님의 꿈과 현재 교수님의 꿈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무엇을 이루어내겠다 하는 거창한 꿈과 그에 관련된 실현 과정을 기대한 질문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었습니다. 고학년이 되면서 취업에 대한 걱정을 하다가 공인회계사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한 단계 한 단계씩 준비해 나가다 보니 저의 길을 찾게 된 경우이죠. 좋아서 시작했던 일은 아니지만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하다 보니 경영학 교수요원으로 원조를 받아서 국비 장학생을 다녀올 수 있었고 교수가 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꿈은 예전에는 한국에서 내가 사는 아파트만이 내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구는 영국인, 미국인, 중국인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인데 국제적인 봉사에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그 책임을 외면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는 그 책임을 조금씩 실행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국제 회계 기준 위원회로서 해야 하는 일도 그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1988년 국민대학교에 처음 들어와서 강의 계획표마다 강의목표에 ‘세계 평화와 인류 복지를 위한다.'를 써넣었는데 어쩌면 농담처럼 시작했던 일이 이제 조금씩 실현화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Q. 20대를 즐기지 못하고 힘겨워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요. 교수님이 생각하시는 20대만의 특권은 무엇일까요?
대학 4년 동안 자신이 하고싶은 일은 꼭 해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꼭 쉬지 않고 4년 만에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직하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공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단 1.2년만이라도 그 분야에 심취해서 시간을 보내보기를 바래요. 20대 때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선택이자 그 당시 정말 마음껏 즐겨보고 지나와야 후회가 남지 않거든요. 또 그런 후에야 자신이 가야하는 방향을 보다 명확히 정할 수 있다고 봅니다.
Q.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국민대란 ***이다?
'국민대학교는 든든한 서포터다.' 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도 졸업생들과 자주 만나는 편인데 제가 외부 활동들을 하는데도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어준답니다. 학교 밖에서 다른 활동들을 많이 하면 강의도 많이 못하고 재학생들이랑 많이 만나지 못해 싫어하지 않을까 늘 걱정을 하는데 졸업생들이 제가 대외적으로 활약해 줄 때 큰 힘이 된다며 응원을 아끼지 않는 편이죠. 그런 의미에서 국민대학교란 제 든든한 지원군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기사에 담을 사진을 찍는데 교수님께서 사진을 배우고 싶다며 카메라에 관심을 보이셨다. 이제 국제회계기준위원회 본부가 있는 런던으로 떠나야 해서 출국 준비로 바빠진 탓에 듣고자 했던 사진 관련 수업을 직접 들을 수는 없는 상황이지만 책이라도 사가서 혼자서 공부해보겠다고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눈이 반짝이는 듯 했다. 교수님께서 우리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우리보다 더 많은 꿈과 열정을 갖고 계시는 것이 또 한 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서둘러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그 '무엇'을 찾아내보는 것은 어떨까. 머리에 학사모를 얹는 아찔하고도 짜릿한 순간이 오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