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꽃도, 하늘도 모두가 흙빛이다. 곳곳이 화려하게 빛나는 디지털 시대의 그 흔한 색조 하나 없이 음영만으로 깊이 침전하고 가득히 물든다. 단조롭고 어딘가 무디게 보이는 이 세상은, 그러나 그 담담함에 한 번 젖어들면 헤어 나오기 힘들다. 이건 흑백 사진 동아리 '빛이랑'의 카메라가 보고 느끼고 담아내는 세상이다. 투박하리만치 검은 필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소중한 선물, 흑백 사진은 마치 오랫동안 잊고 지낸 옛기억의 일부 같기도 하고, 바쁘게 지나치는 현실에서 놓치고 마는 한 구석 같기도 하다. 이런 흑백 사진만의 매력에 푹 빠진 국민*인들이 모인 흑백 사진 동아리 '빛이랑'을 만나보았다.
Q. '빛이랑'의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희 '빛이랑'은 흑백 사진 연구 동아리로, 흑백 사진을 찍고 인화하여 전시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흑백 사진인 만큼 디지털 사진기가 아닌 필름 카메라로 직접 찍고 인화하는 모든 과정을 거칩니다. 학교에 재학 중이면서 동아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을 YB, 졸업생이지만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선배들을 OB로 나누고 있는데 YB와 OB를 합쳐 총 170명 가량의 회원들이 빛이랑 속에서 함께하고 있습니다. 동아리의 이름 '빛이랑'은 '빛을 받는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빛을 얼마나, 어떻게 받는지에 따라서 다양한 모습이 나오는 흑백 사진의 특성을 살린 이름입니다. 동아리 설립 초기에는 북악 포토회였다가 91년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습니다.
Q. 전시회를 하신다고 하셨는데,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A. 전시회는 매 학기마다 한 번씩 하고 있는데 1학기에는 기존에 활동하던 회원들의 정기전이 있고 2학기에는 동아리에 새로 들어온 신입 회원들의 신인전이 있습니다. 전시회들은 한 번 치러질 때마다 1주일에서 1주일 반 정도의 기간 동안 열립니다. 교내와 교외에서 각각 이루어지며 교내 전시회는 북악관 1층에서, 교외 전시회의 경우 청계천 근처의 한 갤러리에서 지속적으로 열고 있습니다. 1년에 한 번 정도로 신입 회원들이 '작은 전시회'를 하기도 합니다. 지난 2학기에는 경상관 5층에서 작은 전시회를 보실 수 있으셨을 겁니다. 새로 흑백 사진을 접한 동아리 회원들이 낯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열심히 배우고 참여해 보람을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Q. 빛이랑의 자랑거리는 무엇인가요?
A. 빛이랑은 다른 중앙 동아리들에 비해 동아리 방이 아주 큰 편입니다. 그 덕에 동아리 방 내에 암실을 가질 수 있고, 이 암실을 통해서 회원들이 보다 쉽고 편하게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할 수 있습니다. 사진 동아리로서는 꽤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아리 방에서 원하는 만큼 사진을 찍고 뽑아 실력을 키워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회원이 많아 동아리의 네트워크가 탄탄히 구축되어 있습니다. 매 주 회의 및 세미나를 열어 동아리의 운영 방안을 논의하고, 신입 회원들에게 자세하고 친절하게 카메라에 대해 알려주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카메라의 조리개와 셔터 맞추는 법, 사진 현상과 인화법 등 카메라의 구조와 사진을 찍고 뽑는 방법들을 선배 회원들이 보다 쉽게 알려줍니다. 또, 방학마다 하계 출사와 동계 출사를 나가서 몇 일간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합니다. 오로지 사진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잠시나마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서 동아리 회원들과 친목을 다질 수 있습니다.
Q. 이 기사를 보고 있을 국민*인들에게도 흑백 사진 잘 찍는 법을 살짝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어떤 사진이든 그렇겠지만 흑백 사진은 여러 번 찍어보는 게 중요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흑백 사진은 빛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빛의 양과 세기에 따라, 빛이 들어오는 위치에 따라 정말 각양각색의 사진이 나오곤 합니다. 같은 물체를 찍어도 빛의 사용을 다르게 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빛을 다각도로 활용해 여러 번 찍어보면 원하는 사진을 얻게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Q. 흑백 사진이 갖는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A. 빛이랑의 회원들이 대부분 말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화지에 서서히 상이 뜰 때 DSLR이나 디지털카메라로 느낄 수 없는 희열을 느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미 액정에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와 달리 필름 카메라는 인화하기 전까지, 혹은 인화하는 중에도 완성작을 만날 수 없습니다. 특히 사진에 색이 없다보니 사진의 완전한 느낌은 전시회 조명 아래 놓인 완성작만이 보여줄 수 있는데, 그렇기에 기다림의 미학을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맞춰 자동으로 사진이 잘 나오게 설정되어있는 DSLR에 비해 각종 조작을 통해 자신의 방식대로 찍을 수 있는 것 역시 흑백 사진의 특별한 매력입니다.
Q. 국민*인들에게 빛이랑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A. 흑백 사진이라고 하면 왜 굳이 그걸 선택했느냐며 거리감을 느끼는 분들이 많으십니다. 언뜻 보면 색이 없으니 재미없고 지루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분명 흑백 사진은 흑백 사진만의 매력이 있습니다. 빛이 보여주는 흑과 백의 무궁무진한 조화는 다양한 색들의 혼합만큼이나 다채롭습니다. 더 많은 국민*인 여러분들이 흑백 사진의 새로운 면모를 보시고 관심을 가져주신다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빛이랑과 함께할 예비 빛이랑 회원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합니다.
단단한 끈에 걸려있는 방금 막 인화된 사진들과 책상 위에 놓인 길고 검은 필름 꾸러미, 책장을 빼곡히 메운 사진첩들과 칠판을 수놓던 회원들의 얼굴이 담긴 사진들. 사진을 찍는 동아리답게 동아리방은 사진으로 가득했다. 오래되어 때가 탄 시간들부터 아직 머릿속에 생생한 며칠 전의 시간까지 빛이랑 회원들이 지나온 여러 시간들이 그곳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사진을 보고 느끼며 환하게 웃음 짓던 빛이랑 회원들의 현재까지도. 어쩌면 빛을 받은 건 사진 속 대상이 아니라 동아리 '빛이랑', 그들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