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을 맞아 여기저기 놀러 다니며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자금 사정이 빠듯한 대학생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군다나 날이 추워 야외 활동보다는 실내로 들어가고 싶기 마련. 그래서 준비했다. 입장료가 무료라 부담 없는 박물관 나들이. 그간 미처 몰랐던 사회 ․ 문화에 대해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쌓는 데 드는 비용이 ‘0원’이라니, 실로 반가운 얘기가 아닌가. 서울에 위치하고 있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얼마든지 쉽게 갈 수 있다. 준비는 교통 카드 한 장으로 족하다. 당장 따스한 추억을 만들러 떠나보자.
건물 외벽의 커다란 모형 경찰이 인사를 건네는 경찰 박물관.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경찰의 업무를 직접 느끼고,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여 국민의 경찰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곳이다. 경찰박물관은 경찰의 역사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1층부터 6층까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테마의 전시관을 두고 있다. 2층 체험의 장에서는 수갑 채우기와 지문 탐지 등 경찰 업무를 시행해 볼 수 있고 10시부터 30분 간격으로 시뮬레이션 사격도 체험할 수 있다. 4층 이해의 장에서는 보안 경찰, 경비 경찰, 교통 경찰 등 다양한 경찰의 종류와 역할을 소개하고 있다. 5층 역사의 장에는 시대별 대한민국 경찰이 걸어온 길을 연표 및 사진 자료를 통해 설명해 놓았고 조국을 위해 일하다 순직하신 경찰관 분들을 기리는 추모 공간이 있다. 공간만 두고 보면 작은 통로에 불과하지만 그 숭고함에 절로 마음이 가라앉는 엄숙한 공간이다. 경찰박물관으로의 외출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되새길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박물관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나무로 만들어진 이름 모를 농기구와 커다란 쌀독이 반긴다. 사라져 가는 유무형의 농경유산을 지키고 가꿔서 농업을 잘 모르는 세대들에게 농업의 새로운 가치를 심어주고자 설립된 농업 박물관이다. 5천년 농경역사가 살아 숨 쉬는 이 땅, 조상들의 땀과 지혜가 스민 농경문화를 통해 농업에 대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미래 농업을 설계해 볼 수 있다. 현재는 ‘농기구, 보물이 되다’라는 특별 전시가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농업보물[農寶]1호’로 지정된 ‘포천 운천 겨리쟁기’를 비롯하여, ‘영광 하사 써레’, ‘쟁기 운반용 지게’ 등 그 동안 일반적으로 보아왔던 농기구와는 다른 독특한 농기구들을 특별히 골라 전시했다. 한 아름도 넘는 두터운 나무를 듬성듬성 잘라 서로 끼우고 때론 쇠도 마주 끼운 소탈하지만 우직한 우리네를 꼭 닮은 농기구들. 도심 한 복판, 이토록 포근한 흙내가 풍겨오는 박물관이 또 있을까.
농업 박물관에서 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는 아담하고 귀여운 또 하나의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는데, 바로 쌀 박물관이다. 쌀 박물관은 쌀의 역사성과 효능을 널리 알리고 밥 먹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우리 농업에 대한 소중함을 알리고 쌀 산업과 쌀 문화의 가치를 보존 ․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계승하고자 한다. 우리 민족이 밥을 주식으로 삼아 온 3천년 동안 우리 삶에 쌀이 어떤 존재였는지, 시대에 따른 쌀 문화의 변화 과정은 어떤지 이곳에서 모두 알 수 있다. 또한 각 지방의 쌀을 이용한 식문화와 쌀의 종류, 영양소도 꼼꼼하게 소개해 놓았다. 성별과 신체 정보를 입력하면 자신에게 맞는 식단을 제시해주는 기계가 있어 건강한 식단은 덤으로 가져갈 수 있다. 쌀눈쌀 자판기에서는 즉석 도정(현미·보리 등 곡립의 등겨층을 벗기는 조작)한 쌀을 팔고 있다. 이곳에 방문하여 늘 마주하던 쌀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유서 깊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하는 한편 서울시민 및 서울을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서울의 대표적 문화중심이 되고자 설립되었다. 상설 전시장에는 조선시대부터 대한 제국기, 일제 강점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근․현대 서울의 역사를 알차게 소개해 놓았다. 조선시대의 거리를 재현해놓은 거리 모형 위로는 당시의 모습을 담은 영상이 나와 생생함을 더하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2002년 월드컵 티셔츠와 응원 도구등도 전시장 한 편에 자리하고 있다. 한편 박물관의 1층에서는 2월 9일까지 기획 전시, ‘북경 3000, 수용과 포용의 여정’ 이 진행된다. 서울-북경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하여 북경의 역사문화를 서울시민에게 소개하는 전시로, 북경 전역에서 발굴된 출토유물에서부터 2008년 북경올림픽에 이르기까지 북경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다. 그 밖에도 그림과 사진으로 서울을 되돌아보는 작은 전시와 박물관 외부의 탑승이 가능한 전차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준비되어 있다.
네 개의 박물관은 모두 우연하게도, 다행스럽게도 지하철 ‘서대문’ 역과 ‘광화문’역의 사이에 줄지어 서있다. 튼튼한 두 다리만 있다면 언제든 갈 수 있고 얼마든 갈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인 것. 여유로운 시간, 영화도 좋고 책도 좋지만 모처럼의 박물관 나들이도 좋지 않을까. 초 ․ 중 ․ 고를 거치며 학교의 지침에 마지못해 갔던 박물관이 아닌 성인이 되어 나의 지성과 흥미를 위해 온전히 내 의지로 고른 박물관, 예전과는 느끼는 점이 다르고 생각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이 겨울 국민*인들에게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