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학생이 먼저입니다" 명예교수 강신돈


 

강신돈 교수가 지난 2월 말, 국민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을 하고 명예교수가 되었다. 강신돈 교수는 38년의 재직 기간 동안 학생처장, 기획실장, 경상대학장, 국제통상대학원장, 이부대학 교학부장, 경제연구소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학교발전과 후학양성에 헌신해왔기에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그를 만나 교수 생활 38년간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강신돈 교수의 연구실

Q. 처음 국민대학교에 오셨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국민대학교에 면접 보러 온 날에 눈이 엄청나게 내렸어요. 그때 단과대학의 학장님(당시에는 국민대학교가 단과대학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총장과 같음)과 면접을 보고 본부관 앞에서 학교를 내려다보는데, 그때는 경상관도 없었잖아요, 우리 학교가 무릉도원 같아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 '와! 이런 곳에서 나도 공부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면 이보다 더 좋은 인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당시에는 학교 교사가 굉장히 작았고 교수도 나를 포함해서 77명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캠퍼스가 매우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었고 교수나 교직원들도 정이 많은 분들이어서 따뜻하다는 느낌이었어요.

Q. 38년 전의 교수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처음에는 학생들하고 거의 친구 동생처럼 지냈어요. 그래서 술도 많이 먹었어요. 학생들이 오히려 나를 걱정할 정도로요. 나는 한 명이고 학생들은 수십 명이니까 한 잔씩만 해도 몇 병이잖아요. 그렇게 같이 뒹굴며 학생들을 단합을 시키고 더욱더 자신감을 갖게 했죠. 그리고 당시에는 무역학과(지금의 국제통상학과) 학생들이 방황하고 상당히 침체되어 있었어요. 학생들의 방향을 잡아준 것이 무역사였어요. 무역사 자격을 취득한 사람을 고용한 기업만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할 수 있었거든요. 학생들을 닦달해서 무역사 시험을 보도록 했고 70퍼센트가 합격해서 졸업했어요. 그 친구들이 무역업에 종사하고 우리나라 무역의 주춧돌이 되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교육에 보람을 많이 느꼈어요.



▲ 명예교수가 된 후로도 왕성한 강의를 하고 있다.

Q.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학생이 있으신가요?
아픈 기억일 수도 있고, 좋은 기억일 수도 있는데. 나는 유신 정권과 5공화국과 민주화를 거치면서 이 학교생활을 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학생처장과 기획처장을 하면서 학생들과 갈등도 많았고 고통도 많았었어요. 그때의 학생들은 민주화의 갈등 속에서 교수들은 자기들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교수들에 대해서 굉장히 반감을 가지고 있던 시절이었어요. 그때 내가 그 운동권 학생들을 이해를 시켰어요.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나설 때는 마지막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교수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성의 집단이다. 사람들은 지성의 집단이 경거망동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교수들이 집단행동을 한다는 것은 나라가 진짜 이래서는 안 되겠다 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하는 것인데 그것을 지금 요구하지는 말아 달라."

그때는 학생들이 이해를 못 했죠. 굉장히 교수들에게 반감적으로 행동했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오해가 다 풀렸고 그러면서 학생들이 내 뜻도 받아주기 시작했어요. 그 당시에 학생들이 학생운동을 하게 되면 각 정부 방침에 의해서 징계하고 정신이 없던 시절이었는데 내 손으로 우리 학생을 단 한 명도 징계한 적이 없었어요. 붙잡혀 가면 내 손으로 뽑아왔고 단 한 명도 구속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어요. 그때 학생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 융합특강, 전공 수업 중인 강신돈 교수

Q. 학교에서 보직도 많이 맡으셨는데 가장 보람 있으셨던 일은 무엇인가요?
졸업 정원제라고 학생을 130%를 뽑아서 30%는 졸업을 안 시키는 제도가 있었어요. 내가 기획실장을 역임할 때 정부가 이 제도를 없애면서 대학 입학 정원을 줄이려고 한 거에요. 입학정원이 1,300명이었으면 1,000명이 되는 거죠. 그러면 학교 재정 운영도 문제가 되고 전공도 통폐합시켜야 해요. 학교가 커가려면 어느 정도 교사도 있고 전공 분야나 학생 수도 있어야 하는데 정원을 줄여버리면 교사가 작은 우리 학교는 클 수가 없는 거예요. 이러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서 지금의 교육부를 뻔질나게 드나들면서 설득을 했어요. 그 결과 국민대학교가 전국에서 제일 적게 줄어들었어요. 30% 다 줄어든 학교도 많았는데 우리 학교는 7% 정도 줄었어요. 그것이 토양이 되어서 지금 이만한 크기의 학교가 될 수 있었죠. 내가 그래도 국민 대학에 작은 빚은 갚고 가는 것 같아서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Q. 보람찬 일이 많은 만큼 후회되는 일도 많으시겠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나 있어요. 밖에서 보는 국민대학교의 위상 같은 것이 있잖아요. 우리가 어느 대학보다는 훨씬 컸다, 더 좋아졌다는 말들이 대학 사업이나 사회 사이에서 회자되어야 하는데 내가 국민대를 올 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것이 아쉬워요. 서울 시내의 대학들이 모두 같이 성장했지만 그 속에서 단계를 못 뛰어넘은 것이 아쉽습니다. 내 능력의 부족이고 학교에 대한 미안함이 있어요. 수능 점수가 나오고 고등학생들에게 '너는 성적이 좋으니까 더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할 때 국민대학교가 가지는 위상이 좀 더 높아지기를 바랐습니다.




 

Q. 학교를 떠나는 입장에서 신임 교수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A라는 교수가 있는 국민대가 되어야지 국민대에 있는 A 교수가 되지 마세요. 무슨 말이냐면 내가 더 노력해서 국민대를 업그레이드 시킨다는 각오로 해야지 학교가 좋으니까 그 속에서 톱니바퀴처럼 살지 말라는 말입니다. 본인의 열정, 노력과 함께 학생들과 호흡을 맞추면 국민대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습니다. 모교로 가겠다면 인정상 어쩔 수 없지만 모교도 아니면서 국민대보다 사회에서 조금 더 평가해준다고 이상한 소리 들리는 학교로 가고 그러지 마세요. 그건 학생들에 대한 배신입니다. 이곳을 징검다리나 정거장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여기가 내 종착지라고 생각하세요. 나도 그런 기회가 있었지만 38년 여기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가 떠나는 입장이 되었는데 나는 38년을 이 학교에만 몸담은 것이 굉장히 행복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Q.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강의평가에서 좋게 평가해준 것을 보며 '그래도 내가 학생들에게 미움을 사는 교수는 아니었구나'라며 위안 삼았습니다. 내 학문이나 업적의 유무를 떠나서 열심히 교육하고자 했던 것을 학생들이 받아준 것이 굉장히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정말 마음속으로 선생님, 교수님들을 존중할 것을 부탁합니다. 학생들이 교수님을 존중하게 되면 그 교수님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끌어낼 수가 있습니다. 학생과 교수가 서로 교감을 함으로써 학생들이 더 발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교수님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배우려고 노력을 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싶습니다.

Q. 38년간 몸담으신 국민대학교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디 가서도 항상 자랑처럼 하는 말인데 우리 학교의 장점은 학생들이 참 착하다는 겁니다. 제 38년의 경험으로 보았을 때, 우리 학생들은 착하기 때문에 늘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려는 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재단입니다. 아마 전국 사립대학교 중에서 국민대학교만큼 학교의 자율성을 보장해주고 교수 중심으로 학교를 이끌 수 있도록 해주는 대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학교의 자랑은 캠퍼스입니다. 어떤 학생들은 우리 학교 캠퍼스가 너무 작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넓으면 그것도 문제잖아요. 집이 너무 넓으면 형이 어디에 있는지 동생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옹기종기 모여 있다 보니까 합심의 꽃이 필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강신돈 교수의 연구실 한 켠에는 낡은 침대가 하나 있었다. 85년도에 학생운동을 하는 학생들을 상대하느라 밤을 꼬박꼬박 새워야 했을 때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만 살 것 같아서 마련한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젊었고 열정도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도 버틸 수 있었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두 번 다시 못하겠다'고 그는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의 옅은 웃음 너머로는 여전한 열정과 자부심이 비쳤다. 국민대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강신돈 교수의 남다른 애정은 신임 교수와 교수직을 꿈꾸는 학생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숭고한 정신으로 본교에 반평생을 바친 강신돈 명예교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