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은 ‘어렵다.’ 라고 생각하는 국민*인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내 생각을 얘기하고 상대방을 설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하다못해 친구에게 점심엔 우동을 먹자고 제안하고 설득하면서 얘기를 나누는 것도 일종의 토론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토론은 어려운 것이 아닌 우리 생활에 밀접하게 들어와 있는 것이다. 어느새 말하기 능력이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 각종 토론대회에 나가 좋은 성과를 얻고 있는 국민대학교 토론 모임 시벌을 만나보았다.
(인터뷰는 시벌 회장을 맡고 있는 경영대학 경영정보학부 경영정보전공 고배현 학우와 전 회장단을 맡은 법과대학 법학부 사법학전공 노단비, 법과대학 법학부 사법학전공 임규섭 학우가 함께했다.)
Q. 안녕하세요! 시벌에 대한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고: 시벌은 법과대학의 08학번 선배 4분이서 만드셨어요. 시벌이란 이름은 바를 시(是) 문벌 벌(閥)로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요. 국민대 내에서 대회를 나가는 유일한 토론 모임입니다. 법대 선배님들께서 만드셔서 법대 비중이 높긴 하지만 최근에는 다른 단과대에서 오늘 발길도 늘고 있어요. 저희는 뜻이 맞는 구성원들끼리 모여 활동하면서 토론대회를 나가면서 실력을 늘리고 있습니다. 2012년 말부터 활동했지만 짧은 시간 동안 메이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올라가게 되었어요. 만들어진 지 3년도 아직 안 된 모임이지만 전국의 각종 대회에서 좋은 실적을 기록하면서 발전하고 있어요.
Q. 시벌이라는 이름이 자칫하면 안 좋게 들릴 수도 있는데 이 이름으로 정하게 된 까닭이 있을까요?
노: 일단 세 보이잖아요.(웃음) 창립하신 선배들이 이름을 어떤 것으로 할까 하다가 이 모임의 목적이 정서적인 토론이 아닌 대회를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세 보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해요. 그뿐만 아니라 바를 시(是) 문벌 벌(閥)이라는 한자로서 바른말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이런 이름 덕분에 대회에 나가 되면 사람들의 기억에 굉장히 잘 남아 대부분 저희들을 기억하시더라고요.
Q. 회원들은 어떻게 뽑으시나요? 토론모임이라고 하니 면접이 까다로울 것 같아요.
임: 특별한 면접 절차는 없습니다. 토론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겁니다. 많은 학생들이 표현할 기회를 가져본 적이 없지만 나름의 생각은 다들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숫기 없이 부끄럼 타던 분들도 조금만 연습을 하다 보면 금방 활발히 의사를 표현하세요. 그러면서 스스로도 몰랐던 자신의 장점이나 매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노: 일단 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이 있으면 만나서 ‘왜 하시고 싶은지’ 나 ‘무슨 활동을 하고 싶은지’ 정도를 물어보는데 답변을 들어보면 그냥 와본 사람과 정말 열심히 활동하고 싶은 사람이 딱 나와요. 정말 아무 능력도 보지 않고 열심히 활동에 임해줄 수 있는 분이라면 환영합니다. 상시모집이니까 관심 있으신 분들은 언제나 찾아오시면 됩니다.
Q. 활동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토론 모임이지만 토론 외에 다른 활동은 무엇이 있나요?
고: 시험 기간인 2주씩을 제외하고 1주일에 하루 정도 모이게 됩니다. 학기 초에 시간표 조정을 해서 정기 세션을 할 요일을 정하게 돼요. 정기 세션은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가집니다. 대회가 있으면 대회를 나가는 사람이나 도움을 줄 사람들끼리 모여 수시로 만나는 편이에요. 신입멤버들에 대한 교육, 각종 대회정보를 공유하고 서로 토론연습을 하기도 해요. 이번 학기에는 대회가 많이 예정되어 있어서 대회준비 위주로 활동하고 있어요.
임: 같이 대회를 나갈 팀이 꾸려지면 그들끼리 합의하에 대회 준비시간을 가지되 공유드라이브, 단체 메시지를 통해서 모든 멤버가 대회준비를 도와줘요. 만약 20명 중 3명의 멤버가 대회에 나가면 20명이 3명을 위해 자료나 의견 제시처럼 대회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시스템입니다. 또한, 법대 선배님들께서 창립을 하셔서 그런지 법대 학생들이 많아요. 저도 법대에 재학하고 있기 때문에 같은 과 학생들끼리 모여 전공 스터디그룹을 하고 있기도 해요. 같이 공부하다 보면 서로 모르는 것도 알려줄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Q. 토론 대회는 정기적으로 있는 활동인가요?
고: 요즘 토론대회를 통해 사회적인 문제를 가지고 대학생들이 얘기할 수 있는 장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그래서인지 ‘1회’인 창립대회들이 매년 생겨요. 따라서 원래 없었던 대회 같은 경우엔 임원진들이 먼저 찾아보고 그것에 관한 공지를 따로 띄워줘요. 4.19토론대회나 국회의장 배 토론대회처럼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회 같은 경우엔 저희가 ‘1년 농사’ 라고 부르면서 그 대회가 다가오면 미리 준비를 하는 편이에요. 이렇게 1년 농사라고 부르는 대회와 새로 생기는 대회를 고르게 나가는 편입니다.
Q. 계명대학교가 주최하는 전국대학생 토론대회에서 우승하신 것 정말 축하드려요! 그 대회에서 시벌은 어떤 활약을 보여줬나요?
노: 그 대회는 지금 인터뷰 하는 3명이 한팀으로 나갔어요. 일단 서류심사에 132팀이 지원했고 16팀이 합격했는데 그 16팀에 저희가 선발되어서 대구로 내려가 대회를 치르게 되었어요. 16강과 4강의 주제는 ‘성매매 특별법을 폐지해야 한다.’ 이었고 8강과 결승전의 주제는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였어요. 저희는 그 주제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견을 모두 준비해서 대회에 임했죠.
고: 저는 그 당시에 들어오지 얼마 안 된 신입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두 분(노단비, 임규섭)은 전 부터 해 오시던 분들이고 그 당시 회장단이셨는데 사실 저는 16강에서 너무 떨렸어요. 그래서 실수를 조금 했는데 하지만, 두 분이 워낙 잘 해주셔서 16강에서 결승까지 올라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승 주제가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였고 저희가 찬성 측, 상대편이 반대 측이었어요. 상대편이 굉장히 잘하는 팀이었는데 그쪽에서 작은 실수를 하셨어요. 그걸 규섭씨가 잘 받아 쳐 줘서 우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임: 토론대회의 형식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이 많아요. 내가 하고 싶은 주장 (찬성, 반대)을 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뽑기로 찬성과 반대를 배정받고 이에 대해 주장을 펼쳐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말 믿는 가치가 이게 아니더라도 그것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하다 보니까 말싸움이 아닌 스포츠가 돼요. 서로 존중하고 잘 들어준다는 룰 안에서 얼마나 더 설득력 있는 주장과 공격을 하고 잘 방어하는지를 겨루게 되죠. 공격과 방어가 탁구처럼 잘 이어지는 경우 승패와 관계없이 좋은 경기가 됩니다. 계명대 대회는 모두 핑퐁싸움이 굉장히 잘 되었고 승부자체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어요. 결승전에서 만난 팀은 저희가 예전에 많이 졌던 팀이어서 더욱 긴장이 되었어요. 하지만 ‘지더라도 무력한 패배가 아닌 진검승부를 하자.’ 라는 목표로 임했습니다. 마지막 공방이 끝나고 대회장에 적막과 함께 탄성이 나왔을 때 승패와 관계없이 ‘잘했다.’ 싶었어요. 그래서 만족해 있었는데 사회자의 입에서 “우승팀 시벌!” 이 나오는 순간의 전율은 정말 있지 못할 기억입니다.
Q. 최근에 준비하시는 대회는 무엇이 있나요?
임: 국회의장 배 토론이라고 해서 규모가 큰 대회가 열리고 있는데 지역별로 1위를 8팀을 뽑아 결선을 열게 돼요. 전라도/경상도/충청도/강원도까지 4팀, 서울/경기에서 4팀을 뽑는데 서울 대표가 된 2팀이 모두 저희 시벌 멤버들이에요. (나중에 두 팀이 만나면 어떡하죠?) 그게 제일 큰 걱정이에요. 지금도 제발 8강에서 만나지 말고 결승에서 보자고 얘기하고 있어요. (웃음)
▲중앙선거방송위원회 11회 전국대학생토론대회에 나간 모습
Q. 요즘 방송을 보면 대학생들끼리 토론을 하는 방송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런 곳에 나가보시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 같아요!
노: ‘tvN 대학생 토론대회’를 작년에 나갔었어요. 64강까지 서류를 뽑는데 서류 전형에서 저희가 1등으로 뽑혔더라고요. 하지만 카메라 테스트에서 떨어졌어요. 아마 멤버들 모두 처음이었던 경험이라 그랬던 것 같아요. 하지만 덕분에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어 좋았어요.
고: 방송에 나가는 토론대회가 많이 있진 않아요. tvN의 경우에는 올해는 안 열릴 가능성도 크고, 올해는 JTBC에서 주최한 ‘중앙선거방송위원회 11회 전국대학생토론대회’가 열렸어요. 그건 4강전 이상 올라가면 방송에 나올 수 있었는데 저희가 16강에서 우승팀을 만나는 바람에 떨어지게 되었는데, 방송에 나오는 모습을 보니 부럽긴 했어요. 하지만 TV에 나온다고 그 대회를 좇기보다는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방송에 나와 웃으면서 볼 수 있을 날이 오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시벌에서 활동하면서 얻게 된 이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노: 저는 창립기수 바로 다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창립자 4분 중에 3분이 군대에 가시고 저와 함께 들어온 동기들이 사정이 생겨 다음 회장을 모두 못 맡게 되었어요. 할 수 없이 막 들어온 제가 회장을 맡게 되었는데 학생들은 토론 모임에 대해 가진 ‘재미없다.’, ‘딱딱하다.’와 같은 편견 때문에 안 들어왔어요. 저희는 대회를 나가야 하는데 활동 멤버가 안 모여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창립자 중 딱 한 분 남은 분과 제가 이 모임을 계속 꾸려나가는 게 저에겐 너무 힘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 이 조직이 커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는 게 저는 굉장히 보람차요. '대회에서 하는 것 보다 하나의 조직이 이 정도로 성장했고 발전하고 있구나.'라는 걸 몸소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는 이점으로 다가와요.
임: 나도 모르게 스스로에게 입혀왔던 구속을 벗게 되었어요. 대학에 대해서 소위 간판이라는 구속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회장에서는 학교와 출신을 밝힐 수 없어요. 그래서 이런 구속에서 자유롭게 실력으로 승부를 겨룰 수 있었습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을 가지신 지방대학의 학생 분들도 계셨고 우리 학교보다 좋다고 생각하던 학교의 학생이나 나이가 훨씬 많은 학생들도 이기게 되면서 스스로 제한했던 나의 한계라는 것도 깨지게 되었어요. 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편견으로 보는 눈, 자기 자신의 가능성에 한계를 정하던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질 거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되고, 성공한 자들과 아닌 자들의 차이는 도전의 유무라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것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없어진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저희 멤버들에게도 새로운 것을 주고 “해 볼래?” 하면 “그럼요!”, “재밌겠다!” 라는 반응이 나와요.
고: 저는 시벌에 들어오기 전에 학사 경고를 2번이나 받은 상태였어요. 학사 경고를 한 번 더 받으면 학교를 못 다니는 상황이었고 성적도 별로 안 좋았어요. 저는 여기 들어와서 상도 받았고 상금도 받았지만 그런 것을 이점으로 내세우고 싶진 않아요. 누가 보면 이력서에 쓸 수 있는 내용 한 줄 더 얻은 거로 밖에 안 보일 수 있겠지만 전 여기 들어와서 다시 한 번 행복이라는 게 어떤 건지 생각하게 되고 하루를 보람차게 살 수 있다는, 살아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요. 같이 얘기하고 대회를 나가는 그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삶, 그리고 다시 한 번 살아 있는 게 어떤 느낌인지 느끼게 해 준 곳이 시벌인 것 같아요.
Q. 그럼 반대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고충도 있을 것 같아요.
고: 저희가 현재 남성멤버들이 많은데 토론 대회를 나가다 보면 남성으로만 팀을 꾸려 나가기엔 애매한 대회들이 있어요. 인구토론대회 같은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대회인데 주제가 출산정책이나 미혼모정책에 대해 주로 나와요. 이런 주제를 남자 셋이서 찬성 주제를 말해도 설득력이 떨어지는 데 반대라도 걸리면 입장이 곤란해질 때가 있어요. 또 대회를 나가다보면 저희 말고는 저희 학교 학생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대회를 20개 넘게 나갔는데 심사위원분들이 모두 ‘국민대는 처음이다.’ 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다른 학교는 대회장에서 같은 학교끼리 만나 얘기하는 모습을 보면 조금 부럽기도 해요. 저희와 함께 활동하지 않으시더라도 같은 토론대회에서 만나보고 싶어요.
Q. 토론 실력이 부족하지만 토론을 좋아하는 국민*인들에게 시벌을 추천한다면?
노: 처음에는 한마디도 못 꺼냈던 친구들도 저희와 함께 연습을 하다보면 자기 생각을 곧잘 얘기하게 되요. 많은 학생의 경우 자신이 말을 잘 못 한다고만 생각하고 있는데 말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거예요. 누구나 경험을 해보면 말이 트여요. 저는 대회에 대한 두려움은 경험이 없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해요. 시벌은 그런 경험을 드릴 수 있기 때문에 하고 싶다는 마음만 충분하다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임: 엄마한테 용돈 달라고 할 때는 그렇게 엄마 설득을 잘하면서 토론이라고 하면 일단 기가 죽는 학생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 두려워하는 것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말하는 기술을 배운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고: 토론은 머리의 문제는 절대로 아니에요. 저희는 여기에서 말을 잘하게 되거나 글을 잘 쓰게 되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칭찬이 “너 매력 있어졌다.”에요. 본인이 매력이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저도 학사 경고를 2번 맞으면서 인생 실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여기 들어와서 저 자신에 대해 한 번 더 믿게 되었거든요. 그래서 말을 잘하시고 싶으신 분들은 저희와 함께하셔도 되지만, 자신감을 가져 본인을 좀 더 사랑하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토론의 ‘ㅌ’ 자도 모르는 학생들도 시벌과 함께라면 어느새 능수능란하게 대회에 임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말 잘한다.” “글솜씨가 많이 늘었다.” 라는 보편적인 칭찬 대신 “매력 있어졌다.” 라고 표현하는 시벌의 표현 방식이 독특하다. 취업난과 같은 사회문제로 스펙 쌓기에 열중하는 것 보다는 자신의 매력을 찾아 더욱 매력 있어지는 모습을 발견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항상 자기 자신을 믿게 되면 어느 쪽으로 진로를 결정해도 그에 맞는 길이 생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