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25일 비 오는 수요일, 이응일 감독은 빨간 장미 대신 당신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영화 ‘그랑블루’를 들고 국민대를 찾았다.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 기획한 수요심리시네마 프로그램의 두 번째 장이 열렸다. 수요심리시네마는 총 4회에 걸쳐 영화 속 심리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이다. 매 회 영화감독, 영상 디자인 교수 등 특별 강사를 초청해 심리학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은 물론 깊이 있는 인문학적 해석도 함께 들을 수 있다. 평소 심리학과 영화에 관심이 많은 국민*인이라면 누구든 수요심리시네마를 찾아오라. 당신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심리적 고민의 해결은 물론 더 넓고 깊은 심리학의 세계로 빠져들지니!
두 번째 수요심리시네마는 ‘삶을 완성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삶을 완성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수요심리시네마에서는 역설적이게도 죽음을 통해 ‘삶을 완성한다는 것’의 의미를 돌아보았다.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 ‘작크’는 현실에서 자신의 결핍을 다 채워낸 후에 죽음을 택한다. 이번 특강을 맡은 이응일 감독은 이 영화를 두고 ‘영화의 극적 결말을 위해 과장된 부분도 있지만,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것을 모두 이뤄본 자야 말로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고 말한다. 현실에서의 결핍과 상흔을 극복해 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죽음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강연의 특별 강사로 초청된 이응일 감독은 제 14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장편영화 <불청객>으로 귀추를 주목시킨 신예 영화감독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겪었던 심리적 장애와 극복기를 학생들에게 직접 들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신경증을 앓기 시작해 죽음에 대한 불안증세가 있었다는 그는 “1년간 정신분석 상담을 받으며 심리적 장애를 극복해내기 위해 애썼어요. 심리상담과 인지치료, 정신분석, 마음수행 등 다양한 접근을 많이 했지만 가장 제가 큰 변화를 느꼈던 것은 몸을 움직이는 일이었어요. 감각을 열어젖히고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거죠. 앞서 말한 여러 정신상담에도 방법론이 섞여있으니 완전히 다른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겠네요. 정신과 몸을 동시에 쓰면 작은 변화를 느낄 수 있어요. 규칙적으로 몸을 움직이기만 해도 마음이 변해요. 신기하죠? 몸을 움직이면 씩씩해지고 심리적인 벽도 넘어설 힘이 생기거든요. 그렇게 시작한 수영이 최근 프리다이빙이라는 또 다른 경험으로 이어졌어요. 저에게는 아주 긍정적인 변화였어요.”라고 극복기를 소개했다.
Q. 이번 수요심리시네마에서 영화 ‘그랑블루’를 고르신 이유가 감독님이 경험하신 심리적 장애와 극복 경험과도 관계가 있나요?
1차적으로는 제가 심리적 장애를 극복하는데 도움을 받았던 프리다이빙을 다룬 영화기도 하고요. 영화 ‘그랑블루’의 주인공 ‘작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 사람은 자신의 결핍과 심리적 상흔을 극복하고 하고 싶은 일을 이루어냈을 때 비로소 진정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거구나.’ 한마디로 여한이 없다는 거죠. 물론 영화에서는 극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과장한 측면도 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죽음’이라는 것이 삶에서의 결핍을 채운 사람이야 말로 준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제가 이번 특강에서 준비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개인적 경험을 들어 쉽게 설명하면 제가 태국을 갔을 때 오토바이를 빌려서 타게 됐어요. 저희 어머니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 오토바이는 위험하니 절대 타지 말라고 하셨는데 저는 꼭 타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태국에 가서 오토바이를 빌린 지 10분 만에 제가 어떤 가게를 들이받고 사고를 낸 거예요. 그 순간이 무섭고 두려웠지만 순간적으로 ‘아, 그래도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죽는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전한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영화가 ‘구도’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학생들에게 보편적인 주제는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는 이 영화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권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을 체험하고 느끼고 경험하자. 거창한 버킷리스트가 아니더라도 일상에서 작은 것들을 이루면서 살자.’ 제가 최근에 ‘프리다이빙’을 통해 이룬 제 개인적인 심리적 변화도 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Q. 감독님이 하신 말씀 중 ‘물 속 깊이 들어가는 것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두려운 일이다.’라는 말씀이 인상 깊어요. 저는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감독님께서도 아름답지만 두려웠던 경험을 해보신적이 있나요?
제게는 영화를 시작하는 일이 그랬어요. 하고 싶은 일이었고 아름답게 보였지만 두려움을 넘어서야 했죠. 당시 변리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다가 인도여행을 떠났어요. 그리고 돌아와 막상 좋아했던 영화를 시작하려고 하니 대단히 두렵더라고요. 지금까지 내가 공부했던 것들,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지위의 가능성을 놓치는 것도 싫고. 그 때 어떤 선배가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서울 애들은 늘 계산적인 고민이 많지. 돌다리만 두드리고 행동을 안 하잖아.” 라는 말이었는데, 저한테 하는 말인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말이 동시에 “내가 보기에 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로 들리기도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에게 그 선배가 ‘그랑블루’의 ‘엔조’ 같은 존재기도 하네요. 저에게 자극을 준 친구였으니까.(웃음)
Q. 지금 감독님도 대학생들에게 같은 말씀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겪어보니까 마음의 문제도 있지만 외적인 문제도 분명 있거든요. '헤르쯔 아날로그'라는 밴드의 '위로마이셀프'라는 노래 가사 중 이런 내용이 있어요. ‘이 모든 게 다 내 탓은 아니라네 / 힘내라 남은 날들아 / 혼자 같지만 또 혼자는 아니라네.’ 내가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세상은 아닌 것 같다는 거죠. 저도 영화를 시작하고 나서 후회 많이 했거든요.(웃음) 소설가 김영하씨가 했던 말 중 “요즘은 열심히 살아도 성공하기 힘든 세상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필요한 것은 낙관이 아닌 비관이죠. 비관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세상을 바라보자고요. 현실을 직시하되, 그 안에서 최대한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 건강한 개인주의.”라는 말을 빌리고 싶어요. ‘너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어.’ 이런 거짓말에 너무 휘둘리지도 말고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대신 현명하고 소박하게 이루고 싶은 것들을 이루며 살라고 말하고 싶어요.
Q. 수요심리시네마 프로그램의 취지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국민*인들이 어떤 심리적 경험을 누릴 수 있을까요?
학생생활상담센터에서는 심리학과 여러 콘텐츠를 접목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번 수요심리시네마도 영화와 심리학을 접목시킨 프로그램이고요. 학생들이 학생생활상담센터에 대해 다소 심각한 심리적 문제를 안고 있어야만 찾을 수 있는 곳이라는 부담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센터의 명칭이 학생‘생활’상담센터인 만큼 모든 국민*인을 대상으로 학생들이 더욱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크고 작은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곳이거든요. 학생들이 심리학에 대해 가지는 태도는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인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 하면서도 ‘혹시 내 문제가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정말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심리적 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게 된 거죠. 개인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서 영화 속 인물을 통해 대리경험을 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공통이 가진 심리적 어려움이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그 과정을 간접적으로나마 학습함으로써 자신의 문제와도 연결시켜볼 수 있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을 수도 있죠. 더 많은 국민*인들이 심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함으로써 더욱 즐겁고 행복한 대학생활을 누렸으면 좋겠어요.
Q. 오늘 영화 '그랑블루'를 함께 보고 심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떤 부분이 자신의 삶과 가장 닿아있었나요?
저는 영화에서 ‘작크’가 자신의 결핍을 채워가는 과정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우리 모두 부재나 불만족을 느끼는 부분에 대한 충족을 갈망하잖아요. ‘작크’의 경우는 전에 해결되지 못했던 결핍과 부재의 슬픔 혹은 트라우마를 현실에서 다른 방식으로 채움으로서 상황을 종결하고 '끝내 이루었다'라는 만족을 얻어내죠. 감독님이 말씀하셨듯이 현실에서 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든 것 같아요. 어머니의 부재를 조안나와의 사랑으로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작크는 더 이상 바랄 것 없다 느낀 것 같아요. 그 결과 작크는 자신이 가장 욕망했던 바다 깊은 곳에서 자유롭게 돌고래와 날아다니며 삶을 마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람에게 온전한 만족이라는 것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어요. 사람은 항상 결핍되어있고 항상 무언가를 끊임없이 원하는 상태인 것 같거든요. 어떤 욕구에 대한 완전한 만족이 존재할까요? 만약 그런 만족이 있다면 영화에서처럼 온전히 삶을 마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영화가 메시지 전달을 위해 과장된 측면도 있겠지만요. 현실에서 인생이란 끊임없는 문제와 사건, 사고 그리고 새로운 걱정으로 뒤덮여있기 마련이라 우리는 무언가에 결핍된 채로 그 끝을 온점대신 반점으로 마무리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치만 여한이 있거나 결핍의 상황 또한 우리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삶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수요심리시네마는 사랑을 주제로 한 1회차 ‘사랑의 신비’에 이어 두 번째 ‘삶을 완성하는 방법’까지 많은 심리학적 주제들을 다루며 막을 내렸다. 11월 30일 월요일에는 3회차 수요심리시네마 ‘엔딩노트-Ending is Begining’이라는 제목으로 죽음에 관한 심리학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엔딩노트편에는 하준수 국민대 영상디자인학과 교수가 특별강사로 초청된다. 관심있는 국민*인이라면 이메일(zlsh4255@hanmail.net)로 <신청 프로그램명, 이름, 학과, 학년, 학번, 연락처>를 보내 간단하게 신청할 수 있다. 소규모로 심리이야기를 나누는 특강인 만큼 선착순 20명으로 마감된다. 다음주, 일상에서의 짐은 내려두고 우리의 존재와 마음에게 잠시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