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하면 떠오르는 부정적 이미지를 단번에 쇄신시킨 디자이너들이 있다. 바로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이다. 2015광주디자인비엔날레 ‘지속가능한 미래’ 전시관에는 중국미술학원(China Academy of Art) 작품 5점과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작품 15점이 전시됐다. 광주디자인비엔날레는 2년에 한 번씩 인정받는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디자인계 대규모 행사다. ‘디자인으로 여명을 맞다(Greet the Dawn with Design)’라는 주제로 만들어진 이번 작품들은 패션의 윤리적 실천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온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창의적인 고민이 돋보인다. 이번 행사에 참여한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은 패션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가능성을 모색하면서 원단 재가공, 업 사이클링을 통해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선보였다. 이들은 단순히 새 원단을 사다가 디자인 작업을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버려지거나 잘려진 원단을 구하고 수작업을 통해 그것을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디자인 과정 A-Z에 직접 참여하고 고민함으로써 세상에 하나뿐인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반년 이상의 제작기간 동안 단순한 의상 제작을 넘어 ‘생각하는 디자인’을 위해 달려온 예비 디자이너들의 이야기, 지금 바로 들어보자.
▲ 최해랑, 이혜민, 성가인 학생 作
▲ 김신혜, 성지민, 이재열, 김다래, 장윤정, 임강영, 김수영, 김노을 作
이들은 이번 전시에서 사용된 적이 있는 중고의류, 기업창고의 재고의류, 가공과정에서 버려지는 원단조각, 샘플원단, 손상되거나 재고로 남은 원부자재등을 재구성해 새로운 창조를 시도했다. 또 원단을 재가공하는 과정에 필요한 해체, 찢기, 퀼팅, 패치워크, 색면 분할, 드레이핑 등 다양한 디자인 기술을 개발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새 원단처럼 보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동시에 버려진 원단으로 부터 오는 불편한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는 기술적 방안도 함께 마련했다. 낡고 버려진 재료들로부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는 이들이야 말로 '금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시대가 원하는 디자인에 대해 고찰해보고, 예비 디자이너로서의 윤리적 실천을 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국민대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새로운 도전이 더욱 의미있는 이유는 현재 지속가능성을 모색하는 패션계 산업적 접근이 주로 액세서리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액세서리 뿐만 아니라 의상디자인에서도 독창적인 기술과 새로운 방안 탐색을 통해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는 면모와 교육사례가 긍정적 메세지를 전한다. 옷의 수명을 연장하고, 가공과정에서 발생되는 쓰레기양을 줄이고자 시작된 예비 디자이너들의 행보가 의미있는 이유다.
Q. 2015광주디자인비엔날레 ‘지속가능한 미래’라는 주제로 자신의 작품을 출품하게 됐는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쇼와 전시까지 7개월을 이 작품에 몰두했어요. 큰 무대이기도 하고 스스로도 마음에 드는 작품을 완성하고 싶은 마음으로 소재, 연구, 디자인, 가봉, 본봉, 모델 피팅 등 수 많은 단계를 거쳤죠. 저희 작품을 전시하는 관이 ‘지속가능한 미래’관인 만큼 소재적인 면에서 업사이클링을 이용한 작품을 만들었어요. 작년에 같은 주제로 작업했던 경험이 있는데 그 때는 소재만 재활용했다면 이번에는 제작방법까지 함께 연구했어요. 제 목표는 ‘원단을 재사용한 작품이지만 새 원단을 사용한 작품처럼 보이도록 하자!’였어요. 저는 평소에도 업사이클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회사 디자인실을 다닐 때 남은 원단 중에서 맘에 드는 것들을 모아놨었거든요. 이번 작업에서 그 때 모아놨던 원단들을 사용하기로 했죠. 대신 재단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재가공과정을 통해 새 원단처럼 보이도록 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직접 자수나 입체물을 만들어 원단의 원래 성질을 바꾸는 작업을 했습니다. 재료를 직접 수급하고 원단을 처음부터 짜고 엮고 옷까지 만들려면 새 원단을 사용하는 것 보다 시간과 노력이 3-4배로 들어요. 그렇지만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과정이고 마침내 전시를 했을 때 사람들이 리사이클링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반응을 보면 스스로도 뿌듯하죠.
Q. 디자이너의 윤리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방법을 고안했나요? 그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없었나요?
옷을 만들 때 버려지는 원단의 양이 생각보다 많아요. 보통 1/3, 많으면 절반 이상인 경우도 많죠. 그래서 그 부분에 많은 신경을 썼어요. 원단이 직사각형으로 나오는데 그걸 대부분 곡선으로 디자인해요. 그런데 곡선이 많아질수록 버려지는 부분이 많거든요. 배출되는 원단의 양을 줄이기 위해서 직선을 많이 이용했죠. 사용한 원단들도 제가 하나 하나 모아왔던 것들이었기 때문에 조금도 버리지 않고 싶은 마음도 컸어요. 그래서 직사각형 패턴을 연구했죠. 원단이 기기에서 나왔을 때 가공을 위한 생산과정을 줄여서 그대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로 했어요.
그런데 사실 직사각형 옷을 만들면 옷이 불편해지거든요. 곡선이 최대가 될수록 옷이 편해지는 경향이 있는데 어떻게 하면 옷을 편하게 만들면서도 버려지는 부분을 적게 할까를 고민했어요. 또 버려진 원단은 대부분 두껍고 뻣뻣한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불편함을 완화시키기 위한 방법을 모색했죠. 고민 끝에 어떤 부분에는 기성복의 코트 원단인 울과 비닐을 섞어서 짜기도 했어요. 또 크게 입는 요즘 트렌드에 착안해 품을 크게 해서 원단이 단단해도 몸에 쓸리지 않게 했죠. 이 주름이 잡힌다거나 하는 부분은 디자인적으로 승화시키려고 노력했어요.
Q. 이번 경험을 통해 배운점이 있다면?
패션이라는 것이 소비적, 소모적으로 새로운 것을 제안하는 것인데 그 과정에서 쓰레기가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 부분을 저도 옷 생산과정의 일부라고 당연시해왔고. 이 작업을 하기 전까지 환경적인 면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어요. 그런데 이것을 해보면서 모든 걸 아낄 순 없지만 조금 더 연구를 하면 아낄 수 있는 부분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교수님께서도 그 부분에 대한 지도를 많이 해주셨고, 단순히 디자인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생산했을 때 도출되는 결과들에 대해서도 돌아보게 됐죠. 사실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쉽지 않은 부분이지만 단계 단계에서 환경적인 측면을 고민해볼 수 있고, 디자이너로서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학생들이 원단에 대한 소중함을 모르죠. 5~6천원이면 원단을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실을 직접 고르고 짜고 하는 과정이 2달 정도 걸려요. 만 오천원이면 쉽게 할 수 있는 과정을 저는 몇 달을 돌아온 셈이죠. 그래도 옷을 만드는 사람은 실부터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부터 디자이너가 직접 참여함으로써 관여도를 높일 수 있고, 놓치기 쉬운 부분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죠. 원단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나면 이것을 쉽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디자인에 이용해야 할지에 대한 경각심을 가질 수 있어요. 원단 짜기부터 직접 제 손이 닿아있으니 세상에 정말 하나뿐인 디자인이 되는 거죠.
Q. 이번 경험이 학생들에게 디자이너로서 역량을 기르는데 어떤 교육적 효과가 있을까요?
원단을 사서 만드는 것 보다 기존의 있던 재료가 아닌 다른 재료를 만들어 쓰는 것이기 때문에 기성의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을 창조하는 방법이죠. 버려진 것으로 재가공하는 것이라 기성에서 파는 것과 다르게 실용적인 것과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작업을 해봄으로써 새로운 것들을 개발하는데도 분명 도움이 돼요. 디자인 개발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얻는 거죠. 이번 프로젝트에 참가한 학생 모두 각기 다른 재료와 방법으로 디자인을 했어요. 여러 방법을 고민하고 시도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만의 디자인 방법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거죠.
실제 브랜드들도 이런 작업을 하고 있어요. 코오롱 RE;CODE라는 브랜드는 재고로 남는 것들을 새로 리폼하는 브랜드에요. 패션이라는 것이 시의성, 트렌드가 중요하기 때문에 버려지는 원단이 많거든요. 이렇게 패션기업의 사회적 참여가 점점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미래디자이너로서 윤리적 실천에 동참했다는 의미도 크고요. 좋은 옷을 만드는 것에 더해 환경과 사회를 고려하는 착한 옷을 만드는 것이 미래 디자이너의 역할이라는 점을 학생들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디자이너로서 방향을 잡을 때도 사회적 기여와 환경적 측면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디자이너’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국민대학교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 유명 디자이너 후세인 살리안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패션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다른 분야들이 그러하듯이 패션이 삶을 표현하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나는 모든 것을 아우를 수 있는 다양한 접근을 원했고, 그것들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나는 새로운 관점을 탐구하고 창조하기를 원했다.”고. 이번 비엔날레에 출품된 의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의 작품도 그들의 삶과 가치관을 담고 있다. ‘빈티지’는 시간이 지나 빛을 발하고 가치를 얻게 되는 매력을 가진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지속가능성과 동행의 의미를 더해준다. 광주비엔날레 참가작품들은 현재 조형대 5층에서 상설전시되고 있다. 생각하는 패션디자인, 미래 우리가 만나는 패션에서 그들의 삶을 또 다시 마주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