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마음을 어루만지는 작가, 이하를 읽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기억 하나쯤은 있다. 그게 학교폭력의 기억이든, 사랑하는 사람이 떠났을 때이든, 아주 사소한 기억이든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잘 덮어 덧이 나냐 안 나냐가 중요하다. 등 돌리고 괜찮은 척 웃으면, 어느 순간순간마다 바늘처럼 나를 깊게 찔러 아프게 할 것이다. 이런 이들에 “가만히 그 기억을 바라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아픈 기억을 어루만져주는 사람이 있다. 바로 심리치료사가 아닌 글로서 마음을 치유해주는 작가다.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이야기하는데 성인들의 가슴까지 저릿하게 만드는 '기억을 파는 가게'의 저자, 이하를 온통이 만났다.

 

 

Q : 인터뷰에 앞서 먼저, 본명은 이정하인데 이하를 필명으로 쓰고 있네요. 따로 이유가 있나요?

네. 제 본명이 다스릴 ‘정’에 물 ‘하’ 자를 써서 이정하예요. 다만 어떤 다스림이나 통제 없이 물처럼 살고 자유롭게 쓰고 싶어서 ‘정’ 자를 빼버렸어요. (웃음)

Q : 작가 이하로서의 하루가 궁금해요.

돌아가는 하루의 패턴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는 패턴을 싫어하고 자유로운 것들을 추구하지만, 소설은 장기전이라 체력이 중요해서요. 회사생활 하듯 10시에 보통 작업실에 나가 커피 한 잔을 마시고, 30분 정도 책을 읽어요. 그리고 오전 작업을 시작해요. 끝나면 1시에서 2시쯤? 밥을 먹고, 6시까지 다시 작업해요. 그 후에 저녁에 운동하고. 샤워하고 집에 들어오고. 그런 패턴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그래야 장기적으로 글이 조금씩 축적되고 그게 또 하나의 소설이 되기 때문에 지키고 있어요.

Q : 작가는 언제부터 꿈꿨나요?

어릴 때부터 그냥 “나는 글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돌이켜보면 특히 대학교 때 올인을 했던 것 같네요. 습작하고. 그리고 대학교 4학년 때 신춘 문예 신인상에 그동안 썼던 걸 다 모아서 보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여기서 당선이 안 되면 쿨하게! 미련 없이! 사회에 나가는 거고, 당선되면 작가와 시인의 길을 걷겠다.” 근데 거기서 고맙게도 당선이 돼서 쭉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죠. 근데 그러면 뭔가 쫙- 펼쳐질 줄 알았는데 첩첩산중이에요. (웃음)

 

 

Q : 책들이 공통으로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제가 워낙 청소년 때 방황을 많이 해서요. 보통 청소년 시절을 23살까지 치더라고요. (웃음) 저는 10대 후반부터 군대 갔다 와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세상에 대한 갈등도 많았고, 상처도 많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소설 속에 자전적인 부분들이 많아요. ‘기억을 파는 가게’를 보면 아리가 사는 산동네가 딱 제가 살던 이화동 벽화 마을이고요. 제가 거기서 살았는데. 태권도도 제가 했었고. ‘괴물사냥꾼’의 무영이도 제가 남학교를 나왔는데, 그때는 학교폭력이 많았었어요. 그때 느꼈던 갈등이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소설이에요. 스스로 내적 치유도 하고, 같은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많을 테니까 이 소설을 읽고 그런 부분들에 조금 더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청소년들이 눈에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Q : 이상하게 이하 작가의 작품들은 청소년들에게 들려주는 것 같지만, 어른들의 심금도 울리는 것 같아요.

우리 어른들 안에도 아직 청소년들? 성장되지 않은 내면의 청소년들이 다 있거든요. 그래서 어른들이 읽으면 내면의 청소년들을 자극하게 되고, 그랬을 때 자신의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인 과거의 청소년과 화해를 한다든가, 과거의 상처와 다시 대면하게 된다든가. 그게 이 성장소설을 통해서 가능하므로 어떻게 보면 어른들한테 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Q : 신간도 준비 중인가요? 귀뜸…! 해주실 수 있으세요?

반전이 있으니까 내용만 살짝 귀띔 해드릴게요. (웃음) 다음 소설은 백석과 관련된 청소년소설로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동주가 인기가 많잖아요. 그런 느낌으로, 어느 날 주인공의 아버지가 사라졌어요. 아버지는 백석 연구자인데, 아버지가 곳곳에 남겨두신 사인을 보며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졌을지를 찾아 나가는 이야기랍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웃음)

 

 

Q : 저희 때는 교수님과 왕래가 많이 없다고 생각을 했는데, 작가님 얘기를 들으니까 허물없이 지내신 것 같은데요?

저희 때도 그랬어요. 학생들하고 교수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멀고 항상 조심스럽고, 존경스럽고 보통 그렇잖아요. 근데 저는 시를 썼는데 교수님 얘기를 너무 듣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냥 찾아갔어요. 교수님 실을. ‘똑똑똑’ 문 두드려서 수시로 찾아가고, 여쭤보고, 교수님도 그런 걸 좋아하시고요. 학생으로서 그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은 거, 궁금한 거 다 물어보는. 지금도 멋진 교수님들이 많은데, 저는 그때 교수님들이 다 시인, 작가의 모델로서 정말 멋진 교수님들이 계셨던 것 같아요. 감사하게도 그런 영향을 잘 받아서 저만의 길을 만들어나갈 수 있었어요.

Q : 이제는 반대로 이하 작가가 학생들과 허물없이 지내는 것 같네요. 중학교, 고등학교에 작가강연도 다닌다고!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어요. 제가 프리랜서 기자, 기업 홍보팀,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했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거죠. 너무 재미있어요. 생각이 너무 열려 있잖아요. 그래서 다양한 얘기가 가능하고 마치 소설 쓸 때의 설레는 기분을 느끼게 돼요. 또 많은 소재를 얻고 언어들을 계속 들어요. 저 혼자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말을 하면 한계가 있는데, 학생들을 만나면서 그 날것의 언어들을 그대로 따올 수 있는 것 같아요.

Q : 작가로서의 즐거움이 있다면?

일종의 사고실험이라고 해야 하나요. 캐릭터들을 머릿속에 딱 몰아넣고 “너희끼리 살아봐.” 하는 거죠. 그러면 그 인물들이 자기 마음대로 갈 때도 있고, 또 내가 어느 정도 생각했던 테두리를 벗어나서 갈 때도 있고요. 거기에 조금씩 살이 붙으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근데 그 과정이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또, 내가 그걸 쓰고 있는 동안에는 그 세계에서 살고, 또 다른 글을 쓸 때는 그 세계에서 살아보고. 뭔가 생을 여러 번 사는 느낌? 그런 경험이 일상 속에서는 살기 힘들잖아요. 그런 것이 어떻게 보면 작가의 특권인 것 같아요.

 

 

Q : 오글거리실 거 알지만 강연하실 때 학생들에게 조언해주시는 것처럼, 기사를 볼 국민*인들에도 한마디 부탁드려도 될까요?

자유? 나 자신으로부터의 자유라고 해야 하나요.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과정을 겪었어도 그런 부분에 있어 자신과 화해하고, 그걸 넘어서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 나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하고 싶은 걸 꼭 하라고 안 그러면 후회한다고요.

 

 

 

작가 이하는 매우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인터뷰를 통해 되짚어본 대학교 시절의 이하는 그때도 지금과 같이 자유로웠지만, 자신이 원하는 일에는 더 끓었고, 가장 치열했다고 말했다. 그 치열함이 신춘문예 당선의 결실을, 그리고 지금의 이하 작가를 만들지 않았을까. 그 자신도 이렇게 말했다. "학점도 엉망이었고 토익점수도 없었지만, 그때 정말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던 창작은 미친 듯이 했다." 스스로 존경하는 작가를 찾아가 인터뷰하며 수첩을 들고 뛰던 아날로그적인 방식이었지만, 어쩌면 지금의 학생들보다 더 열정적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처럼 당장 수확이 없더라도 좋아하는 것에 미쳐볼 용기가 가장 젊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