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악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국민대학교의 캠퍼스는 사계절 내내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5월이면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벚꽃이 흩날리고, 가을에는 알록달록 단풍들이 캠퍼스의 낭만을 더해준다. 꽃이 지고, 나뭇잎이 떨어져 황량한 겨울도 예외는 아니다. 국민대학교에는 여전히 365일 지지 않는 특별한 꽃이 있기 때문이다. 성곡도서관 앞에 있는 성곡동상에 놓인 이 특별한 꽃은 한 일주일 내내 싱싱하게 피어있는 것은 물론이고, 매주 다른 꽃들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매번 이렇게 예쁜 꽃들로 우리에게 즐거움을 주는 걸까? 그 주인공은 바로 국민대학교 수서팀에서 근무 중인 이선영 차장님이다. 365일 지지 않는 꽃의 주인공, 이선영 차장님을 만나 인터뷰를 해보았다. |
-29년 정도 됐어요. 지금 디자인 도서관이 있는 자리가 원래 도서관 자리였어요. 거기에 도서관을 지으면서 왔죠.
#와, 굉장히 오래 근무하셨어요.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런데 차장님이 근무하시는 수서팀은 책을 관리하는 곳이죠?
-네, 맞아요. 학생들은 도서관을 하나로 생각하는데 도서관에도 부서가 열람팀과 수터팀 2개로 나뉘어요. 수서팀은 책을 구입하고 정리해서 열람팀으로 보내요. 그럼 열람팀은 그걸 가지고 학생들에게 대여를 하는거죠. 업무가 두가지로 명확이 구분히 되어있고 열람팀과 수서팀을 오가면서 근무하고 있어요.
#책과 관련된 일을 하시면 꽃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보이는데.. 동상에 꽃을 놓게 된 계기가 뭔지 궁금해요.
-5년 전에 열람팀에 있을 때 도서관 안에 꽃을 놓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대학원 실장님으로 계신 분이 당시에 부장님으로 계셨는데 도서관 안보다 저 동상에 꽃을 놓는게 어떠냐고 먼저 제안을 하셨어요. 그래서 동상에 꽃을 가져다 놓기 시작했죠.
꽃을 놓기 전엔 학생들이 동상을 재떨이처럼 사용했어요. 동상 위에 올라가 앉기도 하고. 그런데 동상 위에 꽃이 놓이기 시작하면서 그런 것들이 없어졌어요. 더이상 동상을 훼손하지 않고 깨끗하게요. 누군가 소중히 대한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함부로 대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전 동상이 도서관을 지켜주는 하나의 수호신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동상에 꽃을 가져다 놓으면 도서관의 전체 분위기라던가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하기 전엔 조금 고민을 하기도 했어요. 몇 번 하다 그만두려면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게 나으니깐 몇번이나 생각했죠. 그래도 학교가 크게 발전되는 밑거름을 해주신 분이니깐 신경써야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누가 강요하는 것도 아닌데, 몇년 동안이나 꾸준히 꽃을 가져다 놓는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오히려 누가 시키는 일이었으면 못했죠. 내가 좋아서 하는거니깐 꾸준히 할 수 있었어요. 스스로도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하단 생각을 해요. 일주일마다 새로운 꽃을 만날 수 있는 즐거움도 있고, 많은 학생들이 함께 즐길 수 있고. 이런 점들에 대해서 행복해요. 꽃값을 주신다는 말씀도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꽃값 받으면 불편하고 더 부담이잖아요. 오히려 꽃을 보고 함께 즐길 수 있게 이렇게 장소가 제공되니깐 고마워요.
#그럼 꽃은 직접 다 고르시는거예요? 매주 꽃이 바뀌고, 그 종류도 다양하더라고요. 도서관을 지나가다보면 동상 앞에서 사진 찍는 학생도 있고, 꽃만 따로 촬영하는 학생이 있을 정도로 예쁜 꽃들이 많아요. 원래 꽃에 관심이 있으셨어요?
-꽃꽂이를 27-8년정도 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살려서 여기에 해놓는거죠. 꽃시장에 직접 가서 꽃을 고르고, 플라워 아트를 하는거에요. 그런데 꽃을 밖에 놔야하니까나 제약이 있어서 아쉬워요. 예쁜 장미를 꽂아놓고 싶은데 실외여서 여름엔 3일만에 빨리 지거든요. 겨울에는 빨리 얼어죽고.
그래서 겨울에는 꽃을 비닐로 싸서 놔요. 그럼 꽃이 얼은 상태 그대로 있어요. 시들지 않고. 그래도 일주일 넘게 같은 꽃을 보면 그건 좀 그러니깐 일주일에 한번씩 꽃을 바꿔요. 휴가갈 때는 미리 바꿔놓고 가기도 하고. 올해는데 못했는데 작년 크리스마스엔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맞게 꾸미기도 했어요. 연초엔 소나무로 하기도 하고. 계절마다 조금씩 다르게, 그 계절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직접 꽃을 사서 꾸미는 게 보통일이 아닐 것 같아요. 그런데도 5년이 넘게 꾸준히 해오셨잖아요. 꽃도 직접 고르시고요. 힘들다고 생각한 적도 있으실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시장에 갖다와야 하니깐 시간에 좀 쫓기는 게 있어요. 꽃을 사러 가는 시간, 사러 오는 시간, 만드는 시간이 있으니깐 아침에 서둘러야 하거든요. 그래도 덕분에 부지런해진 것 같아요. 꽃시장에 있는 분들하고 더 친해지기도 하고, 많은 사람들이 봐주니깐 좋아요. 저 스스로도 꽃에 대해서도 더 많이 알게 되고요. 작은 부분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뭔가 느꼈다면 정서적으로 풍요로워지니깐 뿌듯해요.
조화는 아무리 예뻐도 생명력이 없잖아요. 하지만 생화는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게 전달이 돼요. 생명감이 있으니까요. 동상에 꽃을 갖다 놓으면 시간이 갈 수록 꽃이 생생해지고, 계속 생명을 불어넣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함께 느낄 수 있고요.
그리고 내가 여기서 봉급을 받고 있으니깐, 동상에 꽃을 갖다놓는게 환원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개인이 노력하는 것도 있지만 기회를 준거잖아요. 기회를 준 것에 대한 환원을 해야한다고 생각해요. 부서를 옮기더라도 도서관 사람들이 반대만 안한다면 제가 퇴직할 때까지 하고 싶어요.
#학교에서 29년이나 근무하셨잖아요. 학교와 관련된 추억들이 많으실 것 같아요. 그 중에서 어떤 일이 가장 기억에 남으세요?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함께 한 순간들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도서관에 처음 와서 오픈한 것도 그렇고, 지금 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이전해서 발전하고, 처음으로 디자인 도서관이 오픈한 일들이 인상깊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도서 작업이 전부 수작업이었어요. 그러다 전산화로 바뀌었는데 그게 업무상 가장 큰 변화였어요. 도서관에서 주도해서 행정업무까지 연결해서 전산화 작업을 유도했죠. 2005-6년도에 교과부의 한국고전적정보화사업에 참여해서 고서목록을 전산화한 것도 기억에 남고요.
이렇게 학교가 발전하는 걸 볼 때마다 기분이 좋아요. 외부출장갔을 때도 학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 학교가 굉장히 굉장히 발전적이란 이야기를 해요. 그럼 정말 기분이 좋아요. 이성우 총장님이 의욕적이고 학교 발전에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계지셔서 앞으로도 학교가 많이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학생들이 많이 오고가는 도서관에서 근무하시니깐 학생들과 마주칠 일도 많으시죠?
-열람팀에 있으면 학생과의 관계가 많이 이루어져요.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76학번 학생도 있고요. 학생들과 가까이하고, 그 학생들 중 학교에 현직교수로 계신 분도 굉장히 많고.. 열람팀은 학생들하고 관계가 잘 이뤄져야 해요.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자료나 책을 찾아주는 것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잘 공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도서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도서관의 역할을 더 강화시킬 필요성이 있다고 보고요.
#마지막으로 국민대학교 학생들에게 한말씀 해주세요.
-대학생활은 백지라고 생각해요. 내가 여기에 어떤 그림을 그리고, 무얼로 채울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거죠. 그러니깐 4년동안 열심히 그런 것들을 찾아서 캐내도록 도서관을 잘 활용했으면해요. 사회에 나가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가질 수 있게요.
특히 다양한 책들을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빌게이츠도, 유명한 영화감독들도 책을 많이 읽었어요. 책은 가장 확실한 기록이고, 인터넷 정보보다 깊이있는 정보니깐 책을 많이 읽으라고 권하고 싶어요. 전공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보단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들을 다양하게 읽으면 큰 도움이 될거예요.
그리고 젊은 시절에 단계적으로 많이 배우라는 말도 하고 싶어요.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는거 말고 시간을 가지고 차곡차곡할 수 있는 걸로요. 빠른 시간에 할 수 있는건 다른 사람도 쉽게 할 수 있잖아요. 이런것들을 바탕으로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 뿐이라는 이선영 차장님을 인터뷰 하는 내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노래가사가 마음 속에 떠다녔다. 그리고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이유를 이선영 차장님을 보면서 깨달았다. 사람이 꽃보단 아름다운 이유는 사랑을 다른 사람과 나눌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잠을 자고 있는 이 애가 나를 이토록 감동시키는 것은
꽃 한송이에 대한 이 애의 성실함 때문이야.
잠들어 있는 지금도 램프의 불꽃처럼
이 애의 마음 속에서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꽃 때문이야.
-생텍쥐베리 ‘어린왕자’
생텍쥐베리의 ‘어린왕자’는 자신의 작은 별 B-612에 있는 장미 한 송이 때문에 행복했고, 주인공은 장미꽃을 성실히 보살피는 어린 왕자의 마음에 감동받았다.
국민대학교에도 어린왕자를 행복하게 만든 장미꽃처럼 국민대학교 학생들을 행복하게 하는 꽃이 있다. 또한 장미를 소중히 보살펴 주인공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 어린왕자처럼, 동상의 꽃을 소중히 보살펴 사랑을 전하는 '이선영 차장님'도 계신다.
캠퍼스에 놓인, 학교와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한 이선영 차장님과 그 손길이 닿은 꽃으로 인해, 램프의 불꽃처럼 국민대학교의 캠퍼스는 빛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