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FF Magazine] TAKE OUT DRAWING & KUNSTHALLE


카페는 하나의 소사이어티다.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이 그곳에 모이고, 테이블 사이의 공간만큼 떨어진 채 하나의 사회를 이룬다. 사람들이 모인 점만 보자면 극장도 사회요, 출근길 지하철도 사회 아니냐고, 더 나아가서는 사회 아닌 곳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극장과 지하철, 카페가 이루는 모임의 성격은 완연히 다르다.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생각해보자. 그곳에서 우리는 대화를 하고, 말싸움을 하고, 서로의 애정을 확인하고, 옆자리 사람의 옷차림을 힐끗거린다. 극장은 사회가 아니지만 카페는 사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진짜 사회가 구성원 사이의 안정된 관계를 근거로 한다면 카페에서 이루어지는 사회란 지극히 임시적이고 파편적이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들고나며, 그에 따라 작은 사회를 이루는 배치도는 급격하게 변한다. 밤이 되어 마지막 손님이 떠나면 그 사회는 잠시 소멸되었다가 다음날 아침 다시 구성된다. 단속성과 임시성, 이것이 카페 소사이어티의 본질이다.
성북동과 대학로, 한남동엔 같은 이름을 지닌 이상한 소사이어티가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takeoutdrawing)’ 말하자면 ‘드로잉을 테이크아웃’하는 곳이다. 이곳은 정직한 재료를 사용해 제대로 된 커피와 음식을 대접하는 유기농 카페이며, 철마다 다른 풍경을 지닌 작가들이 자신의 작업을 풀어놓는 갤러리이고, 아직 딱 한권뿐이지만 책을 만드는 출판사이기도 하다.
미리 고백하건데, 필자는 이 공간에 추억이 많다. (때문에 객관적인 글 따위는 기대할 수 없다.)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성북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의 벽을 장식하느라 밤을 샜고, 계단에 걸터앉아 노래하는 이아립(밴드 ‘스웨터’의 보컬)을 봤으며, 부채 모양으로 펼쳐지는 (말도 안 되는) 메뉴판을 손으로 직접 만드느라 손바닥 근육이 뭉치도록 칼질을 했다. 대학로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는 돌아가신 아빠의 친구를 뵙고 서글픈 인사를 주고받기도 했고, 야외 테이블 위에 장식된 백열등 조명을 보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친구의 결혼 피로연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남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을 위한 디자인 작업을 하면서는 브루스 스털링이라는 요상한 작가를 알게 되었고, 시멘트벽에 100개나 되는 문손잡이를 붙이면서 다시는 문손잡이를 벽에 붙이는 짓은 하지 않으리라 맹세하기도 했다. 올해 초 여름, 아직 선선한 바람이 불던 저녁의 기분이 그랬다.

이 공간을 기획하고, 아직껏 꾸려오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은 정말 이상하다. 삼성, 탄, 레이나. 이렇게 써놓고 나니 더 이상해 보인다.
이 세 사람이 모이게 된, 그리고 이 기묘한 이름을 갖게 된 기원은 ‘접는 미술관(collapsible museum)’이라는 프로젝트였다. 기존 미술관들의 경직성을 비웃었던 이 프로젝트에서 세 사람은 각각 ‘삼성’리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그리고 ‘레이나’소피아미술관을 ‘접었’고 이를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멀쩡한 미술관을 접어버린데 대한 약간의 미안함이었을까, 아니면 사냥한 동물의 이빨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냥꾼의 마음이었을까. 기념비적인 미술관을 접고 나면 끝이 아니다. 우리들에겐 여전히 미술관이 필요하다. 그것은 잉여이고 사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삼성, 탄, 레이나는 ‘동네’를 택했다.
그 첫 결실이 ‘명륜동에서 찾다’였다. 명륜동 전체를 미술관으로 탈바꿈시켜버린 이 전시는 동네 주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고, 그 지지의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2006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지속될 수 없는 꿈이었다. 작가들에게도, 주민들에게도, 그리고 이 세 사람에게도 말이다. 때마침 예술상 상금이 들어왔고, 때마침 커피 소비가 급증하는 시기였다. 이 두 가지 ‘때마침’이 만나 이상한 카페 하나가 탄생했다. 동네 찻집이자 미술관을 표방한 성북동 테이크아웃드로잉이었다.
  이 공간을 또 하나의 갤러리 카페로 여긴다면 곤란하다. 이곳은 예쁘장한 액자에 담긴 작품 몇 개 걸어 놓은 갤러리 카페가 아니다. 이곳을 점령하는 작업들은 때때로 과도하게 살풍경하고, 또 때때로 손님들의 공간을 침범한다.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작가의 작업이 이루어지고, 작가들은 이곳을 레지던스 삼아 아예 살림을 펼쳐 놓는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규모가 작은 ‘화이트 큐브’가 아닌 다른 논리로 새롭게 구성된 미술관인 셈이다. 그리고 우순옥, 안규철, 김을, 김주현, 고산금 등 현재 한국 시각문화의 맨 앞줄에 위치한 작가들이 이 공간을 거쳐 갔다.
성북동에서 그들은 성공을 거뒀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의 커피 맛을 인정했고, 새로운 문화를 바라는 사람들은 이곳의 낯선 풍경을 사랑했다. 이 인정과 사랑을 발판삼아 그들은 대학로 아르코 미술관에, 그리고 한남동에 또 다른 테이크아웃드로잉을 만들었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카페가 하나의 사회라면 이들은 의미 있는 세 개의 작은 사회를 일구어낸 셈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라는 사회를 이루는 구성원은 다양하다. 성북동과 혜화동, 그리고 한남동의 주민들과 그곳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작가들. 이곳에 초대되어 작업을 펼쳐놓는 비거주자 작가들. 이곳의 커피와 음식에 반해 단골이 돼버린 미식가들. 어쩌다 한번쯤 들르는, 충성도 낮은 고객들. 그리고 매일 매일 생겨나는 새 손님들. 이 사회의 구성원과 그들이 그려내는 사회의 온도는 항상 바뀐다.
나이가 들어 부쩍 퇴화한 기억력을 더듬어보면 지나간 시절에도 이와 비슷한 공간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만큼이나 다양한 사회를 만들어냈던 공간들 말이다. 음악다방 세시봉이 그랬을 것이고, 서울대 문리대 시절의 학림다방 또한 그랬을 것이다. 허나 이 두 공간은 경험해본 적이 없으므로 패스. 필자가 직접 경험해본, 또한 열렬한 시민이 되어봤던 소사이어티 또한 적지 않다. 우선 대학로의 ‘살’바가 그랬고, 종로의 ‘오존’이 그랬으며, 유대감이 좀 희박하긴 했지만 홍대 앞의 ‘곱창전골’이 그랬다. 이뿐인가. 역시 홍대 앞의 ‘발전소’와 ‘명월관’, 초반의 ‘드럭’ 또한 그랬다. 모두 10년하고도 5-6년은 지난 기억들이다. 이들은 모두 술집이긴 했지만 하나의 독특한 사회를 이뤄냈다는 점에서 카페였고, 테이크아웃드로잉의 선배들이었다. 구성원 대부분이 술에 취한 사회라는 게 마음에 걸리긴 하지만.

맨 정신으로 만들어진 사회인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앞선 선배들보다 훨씬 건전하고 (좋은 의미에서) 지적이다. 이곳에선 안과 밖 사이에 존재하던 허무함이 없고, 적당한 알코올이 만들어내는 과도한 자의식 또한 없다. 말하자면 폭풍 속 같던 지하에서 기어 나와 멀쩡한 밤거리를 보며 우리들이 느껴야 했던 낭패감 같은 것이 없다. 사람들은 총명하게 이야기하고, 마비되지 않은 혀로 커피를 맛보며, 찌들지 않은 눈으로 작업을 응시한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만들어낸 이런 사회는 한편으로 밍밍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앞선 선배들보다 훨씬 오래 지속될 모임임에 틀림없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 정확히 말해 강남구 논현동 도산공원 사거리 근처에 겉으로 봐서 정체를 가늠하기
‘컨테이너’ 건물이 있다. 그 이름은 ‘플래툰 쿤스트할레(이하 쿤스트할레)’로 독일의 쿤스트할레 개념을 적용한 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는 늘 작품이 전시되고, 종종 영화가 상영되며, 주말이면 시끌벅적한 공연과 파티가 열린다.
만남의 장소이자 토론의 공간이며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플랫폼, 이것이 쿤스트할레가 지향하는 바다. 다양한 일들이 펼쳐지는 공간이기 때문에 사람들도 제각각의 이유를 가지고 쿤스트할레를 찾는다. 어떤 이는 와이파이가 짱짱하게 잡히는 이곳을 동네 카페 삼아 노트북을 들고 찾아와 시간을 보내고, 어떤 이는 접근성 좋은 이곳에서 업무적인 미팅을 갖기도 한다. 누군가는 시원한 맥주 한 잔에 독일식 소시지를 즐길 수 있는 밤이 좋아 이곳을 찾고, 또 다른 누군가는 전시를 제안하고, 포트폴리오를 소개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필자 역시도 그랬다. 선배의 책 출판기념회를 축하하기 위해 쿤스트할레를 찾았고, 유학을 떠나는 지인을 환송했으며, 드렁큰 타이거와 윤미래가 공연을 하는 파티를 즐기기도 했다. 신기하게도 방문에는 늘 새로운 이유가 따라왔다. 복잡하고도 단조로운 도시의 일상이 어떤 공간을 통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건 매우 큰 위안이다. 예술과 문화를 통한 다양성이 존재하는 소사이어티는 그래서 매력 있다.
쿤스트할레를 조금 더 잘 이해하려면 플래툰을 알아야 한다. 이들은 독일 베를린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으로 전 세계 3500여 명의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유럽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플래툰이 한국을 찾은 건 지난 2006년경이었다. 플래툰은 서두르지 않은 철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아시아 서브컬처의 새로운 거점으로서의 ‘한국’의 가능성을 평가했고,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2009년 4월 한국에 컨테이너를 내렸다.
플래툰을 이야기하려면 ‘컨테이너’를 빼놓을 수가 없다. 독일 베를린의 유럽본부 사무실도 역시나 컨테이너다. 그러니까 컨테이너는 플래툰이 고수하는 어떤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일상품을 보관하거나 무역 수송에 사용되는 컨테이너는 그 무엇보다도 이동이 자유로운 건축물이다. 세계를 기반으로 문화와 예술을 펼쳐내는 플래툰에게 이 보다 더 좋은 ‘쿤스트할레’는 없었을 것이다. 기존 화이트 큐브의 고정된 미술관이 담아내지 못했던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 주는 컨테이너. 한국에는 스물여덟개의 컨테이너가 배당되었다. 그 컨테이너들은 블록놀이를 하듯 배열하고 쌓아올려져 바와 레스토랑, 쇼케이스, 홀, 세미나 공간 등을 창조해냈다.
 
 
요새 말로 하자면 매우 ‘시크한’ 이 공간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이유도 설명해야겠다. 쿤스트할레는
‘서브컬처’를 이해하고 지지한다. ‘갤러리’를 타이틀로 건 공간에서 찬밥 신세인 독특한 시각과 접근방식의 작품들에도 환영의 인사를 보낸다. (심지어 올 8월 초에는 ‘귀신’을 테마로 한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이 공간은 아주 대범하게 스트리트 아트, 그래픽 디자인, 클럽문화, 음악, 비디오아트, 프로그래밍, 패션, 정치적 액티비즘까지도 수용한다. 매월 서브컬처와 스트리트 아트를 기반으로 한 신선하고 주목할 만한 전시가 열리기 때문에 관객의 연령대는 젊을 수 밖에 없다.
게다가 창작에 공간에 목마른 국내외 젊은 아티스트들에게 개인 작업실을 내주는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까지 운영을 하고 있으니, 이 공간은 언제나 젊은 창작자들의 열기로 후끈하다. 쿤스트할레에서 보유한 4개의 스튜디오는 선정된 작가에게 6개월까지 무상으로 임대된다. 입주하게 된 작가들은 ‘쿤스트할레라는 소사이어티’ 속에 마련된 인프라와 기술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작품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최근 쿤스트할레의 가장 큰 이슈를 말하자면, 클럽컬처매거진 <블링>과 함께하는 나이트 플리마켓(flea market :?
벼룩시장) 이다. 매달 첫 주 토요일 밤 젊은 셀러들은 자신의 감각 혹은 영감을 들고 이 공간에 입장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감각과 영감을 전달받고, 그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즐기고자 또 다른 수많은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이곳을 찾는다. DJ들이 음악을 선사하고, 뮤지션들이 소박하지만 열정적인 공연을 선사하며 공간은 사람과 문화 그리고 예술로 채워진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리는 것이 골칫거리라고 하지만, 공간을 찾는 사람의 수치 만큼이나 플래툰은 대중성을 갖추기 시작했다.
공간이 소사이어티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공간을 채우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쿤스트할레는 현명한 시스템과 운영방식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끌었고, 그렇게 소사이어티는 완성될 수 있었다. 다양한 이유를 가진 다양한 사람들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질 것이고, 쿤스트할레는 다양성의 소사이어티로서 유일무이한 정체성을 유지하게 될 것이다.
 
테이크아웃드로잉, 쿤스트할레. 이 공간들이 소중한 건 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단순히 독특해서만은 아니다. 음식, 커피, 문화, 예술, 사람 등의 교집합을 가진 두 개의 공간은 지금 이 시대의 커뮤니케이션 동향을 보여 줄 수 있는 축소된 사회이기에 소중하다. 오늘도 공간은 운영된다. 그리고 앞으로 이 축소된 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이 끼적대고, 어떤 사람이 중얼거리다 돌아갈까.
글 / 김형진, 임유미


* BW ‘공간, 그리고 사람과 예술 - Cafe Society’를 통해 ‘TAKEOUTDRAWING’을 소개한 김형진은 _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SADI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후 안그라픽스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 2006년 동료 편집자, 디자이너와 함께 디자인 스튜디오이자 출판사인 ‘workroom’을 차려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 BW ‘공간, 그리고 사람과 예술 - Cafe Society’를 통해 ‘PLATOON KUNSTHALLE’를 소개한 임유미는 _
<블링><데이즈드 앤 컨퓨즈드>의 피처에디터 출신으로 주로 ‘서브컬처’, ‘언더그라운드 뮤직’과 그에 관련한 현상, 사람들을 만나왔다. 현재 프리랜스 에디터로 활동하는 동시에, 뉴 미디어를 기반으로 한 매거진 프로젝트에 뛰어들어 기획과 제작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