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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공 신익희선생 54주기 추모식 거행

우리대학의 초대 학장이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무총장, 내무·외무총장 등을 두루 역임하고 광복후에는 국회의장으로서 의회민주주의의 초석을 놓으신 해공 신익희(1892~1956) 선생 54주기 추도식이 5일(수) 오전 11시 수유리 묘소에서 열렸다.

해공 신익희선생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열린 추모식은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 김철수 국민대 부총장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남덕우 기념사업회 회장의 개식사와 현승일 기념사업회 이사의 약력보고, 그리고 우무석 국가보훈처 차장·남궁영 국민대 총동문 부회장의 추모사에 이어 헌화·분향의 순으로 진행되었다.

신익희 선생(1892. 6. 9 ~ 1956. 5. 5)은 경기 광주에서 출생하여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의 와세다(早稻田)대학 정경학부 졸업 후, 1913년 귀국하여 고향에 동명강습소(東明講習所)를 열었으며 서울 중동학교(中東學校)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普成法律商業學校) 교수가 되었다.

1919년 상하이로 망명해 임시정부 조직을 위한 비밀회의를 갖고 임시의정원 회의를 열어 국호, 관제, 정부 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 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탄생에 기여했다. 임시정부 수립 이후 법무차장, 내무.외무차장, 국무원 비서장, 법무총장, 외무총장, 내무.외무.문교부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광복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 자유신문사 사장, 국민대학교 초대학장을 겸하다가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되어 1947년 의장이 되었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부의장이 되었고, 1949년 민주국민당을 결성하고 위원장에 취임하고, 1950년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다시 국회의장(연4회 역임)에 피선되었다.

1955년 민주국민당을 민주당으로 확대·발전시켜 대표 최고위원이 되었으며, 1956년 민주당 공천으로 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유세 중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