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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
해외로 떠나 봉사활동을 펼치는 단체는 많다. 한국국제협력단(이하 KOICA) 해외봉사단은 NGO의 개념과는 다른 국가적인 차원의 봉사단이다. 한국국제협력단은 우리정부의 대외무상원조를 전담하는 기관으로, 이곳에서 개발도상국으로 해외봉사단을 파견하고 있다. 해외봉사단원은 2년여의 시간동안 현지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다양한 분야에서 지원 및 봉사활동을 펼친다. 아이들에게 미술이나 음악, 한국어 등을 가르치기도 하고, 병원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 지원을 하는 것은 물론 정보통신 및 산업, 농업 기술을 전수하기도 하며, 태권도를 가르치는 등 해외봉사단의 활동 범위는 매우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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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해외봉사단은 군복무를 필하였거나 면제된 만 20세 이상의 일반봉사단원, 만 45세 이상으로 지원 분야에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시니어 봉사단원, 해외봉사활동을 통해 병역의 의무를 수행하는 국제협력요원으로 구분된다. 현역병 또는 보충역 입영대상자 중에서 모집하는 국제협력요원은 전문의 자격을 갖추고 의료봉사활동을 수행하는 국제협력의사(복무기간 : 36개월)와 기타분야에서 활동하는 국제협력봉사요원(복무기간 : 30개월)이 있다. |
HOW |
해외봉사단원은 소정의 과정(1차-서류심사, 2차-기술 및 일반면접)을 거쳐 선발하게 된다. 모집 분야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전공, 경력,
자격증을 소유하고 있다면 선발에 더 유리하다. 선발된 합격자들은 파견 전에 전원 합숙으로 국내훈련 과정을 이수한 후, 평가를 거쳐
해외봉사단원으로 확정된다. 최종 확정된 단원들은 각자의 활동지로 배치되기 전에 현지어 학습과 문화체험 등의 현지적응훈련을 받게 된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배정국가로 파견되어 규정과 지침에 따라 봉사활동을 하게 되는데, 파견에 따른 제반 비용 및 현지 생활비 등이 대부분 지원된다.
게다가 임기를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봉사단원에게는 원활한 국내정착을 돕기 위한 정착지원금이 지급된다(국제 협력요원은 해당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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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 : 해외봉사단 국제협력요원으로 지원하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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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산하(이하 김) : 병역신체검사에서 4급을 받고 공익근무요원으로 배정을 받았는데, 내가 하게 될 업무를 생각하니 솔직히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어 이것저것 알아보던 중 KOICA를 알게 되었다. |
FF : 해외봉사단에 지원하려면 전공이나 자격증 등 특정 분야에 대한 전문적 소양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합격을 가능하게 했던 배경은 무엇이었나. |
김 : 대학시절의 전공이 농업대학의 동물자원학과였다. KOICA에서는 개도국 국민들의 삶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분야를 요하는데, 다행히 ‘축산분야’에 나의 전공이 매치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현지에서 축산보다는 순수생물 분야를 더 많이 접하게 되었고, 그것이 현재 내가 새로운 분야에서 연구를 할 수 있게 한 중요한 인연이 되었다. |
FF : 협력요원으로 선발되어 인도네시아로 떠나기 전 어떤 준비의 시간을 가졌나. |
김 : 외교관이었던 아버지 덕에 어렸을 적 부터 일본, 스리랑카, 덴마크 등의 외국 생활을 경험했던 터라 부담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병역대체근무로 떠난 덕에 받아야 했던 4주간의 군사훈련은 매우 괴로웠다. 훈련을 마친 후엔 이천의 유네스코 훈련원에서 2개월간 동기들과 합숙훈련을 받았다. 배정되는 국가의 언어, 문화, 정책, 정치상황 등에 관해 굉장히 빡빡한 수업이 진행되었지만, 새로운 문화에, 여자 동기들도 있고(웃음), 군사훈련 4주보다 100배는 즐거웠던 리프레싱의 시간이었다. |
FF : 인도네시아로 떠난 후 향수병을 겪거나 애로사항이 있지는 않았나. |
김 : 어렸을 때 부터 경험한 익숙한 외국 생활로 향수병은 없었다. 하지만 인도네시아 현지 생활에서는 무엇보다도 더위가 가장 큰 문제였다. 하루만이라도 땀을 흘리지 않는 날을 원했지만, 그런 날은 절대 없었다. 하지만 그 더위가 풍부한 야생의 환경을 만들었고, 그 환경이 나의 연구 기반이 되었기 때문에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혼자 지내다 보니 외로움에 시달리기도 했고, 불규칙적인 식사로 살도 많이 빠졌더랬다. (동물을 좋아하긴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괴상망측한 도마뱀, 손바닥만 한 풍뎅이, 발소리가 들리는 바퀴벌레, 식겁한 적이 많았다. 물론, 그렇게 동물들을 접했던 경험을 통해 동물 연구를 시작한 계기를 만들기도 했지만 말이다. |
FF : 그런 면에서 여자들에게는 오지에서의 봉사활동이 힘들 수도 있겠다. |
보통 여자들은 못 간다. 아니 보통 여자가 갔다가 보통이 아닌 여자가 되어서 돌아온다는 표현이 맞겠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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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 : 협력요원으로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맡아서 진행했었나. | ||||||||||
김 : 처음 인도네시아에 도착해서 ‘국립 수정란 센터’에서 일을 했었다. 주로 소의 인공수정과 관련한 업무를 처리했으며, 퇴비를 이용해 소의 먹이가 되는 풀의 생산을 증진시키는 프로그램을 짜기도 했다. 하지만 그 분야에는 이미 일본의 국제협력단이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업무 변경을 요청해 ‘국립 보보르 농업대학’의 동물자원학과로 옮기게 되었다. 대학에서는 학문적인 지도를 하거나,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으며, 가끔 워크샵을 진행하고, KOICA 의 프로그램을 통해 학회지를 공급하기도 했다. 동료와 함께 실험 양계장을 만든 경험도 있다. 나름의 기획을 통해 자발적인 활동을 하고자 다각도로 노력했다. | ||||||||||
FF : 그렇다면 협력요원으로 활동하며 현지의 자연환경 속에서 ‘야생영장류’ 연구 활동을 병행한 것인가. | ||||||||||
김 : 협력요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는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다. 그냥 살고 구경하며 현지인처럼 지낸 것이다. ‘병역활동 신분’이라는 규정상 근무 지역을 벗어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등의 활동은 금지되어 있었다. 그 당시에는 그냥 주어진 생활을 한 것이지만, 그 때 보고 느꼈던 자연 그대로의 환경, 인맥 등이 후에 내가 야생 영장류에 관한 연구를 자신감 있게 행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KOICA 해외봉사단 활동이 현지에서의 수행능력을 상당한 수준으로 이끌어 준 것은 정말이지 대단한 메리트라고 생각한다. | ||||||||||
FF : 그렇다면 야생영장류 연구 활동은 언제 이루어 진 것인가. | ||||||||||
협력요원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서 다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협력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또래의 다른 친구들처럼 무엇을 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 남들처럼 변리사 시험을 볼까 생각도 했고, 방황이 매우 심했다. 심각한 고민 끝에 내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동물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려고 결심했던 순간, 마음의 나침반이 다시 인도네시아로 향해버렸다. 연구에 적합하고 필요한 영장류가 있는 장소인데다 언어와 음식, 습한 기후까지도 여전히 익숙했기에 다시 떠나기는 어렵지 않았다. 야생영장류 연구는 협력요원 근무를 마친 6년 후인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년 간 살았던 덕에, 버스노선까지도 다 외워버린 인도네시아의 서부 자바 보보르로 2005년 현지답사를 떠났다. 2006년 재답사로 뜻을 확고히 한 후 2007년부터 2년간 협력요원으로 활동하던 국립 보보르 농업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했으며, 지난 3월 경 한국으로 돌아와 여전히 현지와 연계해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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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 : 선배로서 KOICA 해외봉사단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냉철한 조언을 부탁한다. | ||||||||||
김 : 다른 나라의 문화를 접해야 하는 해외봉사단에게 오픈 마인드는 기본이다. 우리가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적 다양성보다 더 넓은 이해심을 가져야 한다. 현지에서는 우리가 정말이지 이성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문화적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함께 2년을 보내는 동료들과의 인간관계도 고려해야 한다. 가장 친한 친구와도 여행을 함께 하면 트러블이 있기 마련인데, 처음만난 누군가와 2년 동안 함께 여행을 한다고 생각해보라. 인간관계와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자기 스스로 재충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던져주고 싶다. 그 곳에는 마음을 달래줄 소주 한 잔이 없다는 사실을 인지할 것.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스킬, 전문성의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스킬이 부족해도 정해진 프로그램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는 책임감이면 된다. KOICA 해외봉사단에 지원하기 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시뮬레이션 해보고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으면 떠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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